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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담론]성탄절 이야기김인주 봉성교회 목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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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2-24 (화) 19:10:28 | 승인 2013-12-24 (화) 19:11:23 | 최종수정 2013-12-24 (화) 19:10:54

   
 
     
 
크리스마스를 맞이 하지만, 예전처럼 어디서나 캐롤이 들리지는 않는다. 일견 섭섭한 일이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것이 없어지다니 말이다. 만들었거나 연주하는 사람에게 응당 돌아가야 할 저작권 때문이라 한다. 이제는 성탄음악이란 분야에서도 심각하게 배려해야 되는 세상이 됐다. 문화적 환경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성탄에 생각나는 사람 중에 스쿠루지 영감이 있다. 그는 놀부에 못지않은 구두쇠여서 미움을 받는다. 문명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게 되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 제목이 「크리스마스 캐롤」 찰스 디킨스의 짧은 소설이다.

성탄 전날, 수전노 영감의 꿈에 옛 친구 마레가 찾아온다. 동업자였다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간 마레는 열쇠꾸러미를 몸에 칭칭 감고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더 심한 형벌을 받게 될 주인공에게 세 유령이 차례로 찾아온다고 예고한다. 스쿠루지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는 유령들이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자신의 비참한 형편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성탄절 아침에 그는 새 사람이 된다.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과 더불어 잔인하도록 인색한 유대인이 스쿠루지다. 유럽 세계는 오랫동안 유대인들을 박대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도록 몰아부쳤다. 구세주 예수를 거부하고 처형하는데 앞장섰다는 적개심에서 이러한 전통이 비롯됐다. 거주지역도 제한됐고, 누구나 금세 유대인임을 알아차리도록 복식이 정해졌다. 더구나, 번듯한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샤일록이나 스쿠루지가 수전노가 된 것이 전부 자신의 책임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스쿠루지의 이름은 '에벤에셀', 구약성서에 나오는 지명이요, 표지석에 새겨진 이름이다. 적과 싸워 이긴 곳에 세우면서 여기까지 야훼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뜻을 담았다. 이 영감이 새로운 삶을 멋있게 살았다면 나눔과 배품으로 소문난 사람이 됐을 것이고, 이제 그는 그 이름에 걸맞은 인걸이 됐을 것이다. 제주사회가 추앙하는 '의녀 김만덕'처럼 그의 비석이 우뚝 선다면 '도움의 돌'이라는 그의 이름이 한층 더 어울릴 것이다.

문학사상 가장 애틋한 부부애를 담고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성탄절에 얽힌 사연을 담고 있다. 깔끔한 단편소설을 많이 남긴 오 헨리의 작품 중에서도 아주 짧은 글이다.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짐과 델라 부부의 이야기다. 그들은 성탄절에 배우자에게 마음을 전할 좋은 선물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짐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시계를 팔아서 아내의 탐스런 머리에 어울릴 '빗'을 준비한다. 델라는 오랫동안 소중히 여기던 머리카락을 잘라서 남편의 시계의 품위를 완성시킬 '시곗줄'을 산다. 성탄절에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더욱 행복해진다. 이 부부를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것을 갖추고 살면서도 불만으로 가득찬 오늘의 세대에게 이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을 주며 도전한다. 과연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랑의 끈이 나날이 퇴색하며 부스러지고 있는 오늘의 가정공동체에게 이러한 헌신과 배려가 과연 통할 수 있을까? 나의 욕심을 덜 채우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기쁨 나의 행복이 되는 세계는 영영 우리들을 떠나버린 것인가? 문화와 예술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남이 들려주는 음악 말고 손수 만들어 낸 사랑과 감사의 노래가 널리 퍼지는 절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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