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이 제주대학교병원 심장내과 교수, 논설위원

"김송이씨 인가요?"

2014년 첫 출장, 부산에 가서 회의 시작을 기다리던 점심시간이었다. 멍하니 책을 뒤적이다가 받은 전화는 기묘한 억양에 무미건조한 말투의 남성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심드렁하게 '내가 김송이다' 라고 대답하자 이어지는 말, "서울 지방 남부지청입니다"라니. 말투와 말할 때마다 뒤에서 깔리는 '지' 하는 작은 기계음 소리. '개그를 보면서 웃어대던 바로 그 상황이구나. 나한테도 보이스 피싱이 오다니'.

귀가 얇고 남 이야기를 잘 믿는지라 텔레마케팅에 걸려서 보험을 든 것도 수 차례. 남편은 그런 필자를 나무라다 지쳐서 딱하게 바라보고 친정 어머니는 시집간 딸이 혹 보이스 피싱에 걸려들까 해서 보이스 피싱 비슷한 전화만 받으면 항상 나한테 곧바로 전화해서 "이런 전화는 보이스 피싱이니 조심해라"고 알려 주고는 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언론 매체와 개그를 통해 단련된 몸. 속을 리가 없지 않은가.

과연 뭐라고 할지 궁금해서 계속 들었다. 서울지방 남부지청 형사 1부 수사과 부장 이모씨라고 한다. 대전에서 모씨를 검거했는데 그 일당이 가지고 있던 차명계좌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다면서 묻는다. "차명계좌가 뭔지는 아십니까?" "차명계좌의 사전적인 의미를 묻는 것입니까"하고 되묻자 약 10초간 말이 없다. '고객님 당황하셨어요'를 외쳐야 하는 타이밍인가. 이야기를 계속 듣는데 서울남부지청으로 나오란다. 그래서 내가 어디 사는 사람인지는 아냐고 묻자 제주도에 있지 않냐고 대답하는 것을 보아 기본적인 정보는 갖고 있는 듯 했다. 혹시 내 개인 정보도 유출된 것인가.

지난주 카드사의 개인 정보 유출로 인해 일대 혼란이 벌어진 바 있다. 이전 인터넷 쇼핑 사이트의 개인 정보 유출 때 벌어진 작은 혼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큰 혼란으로 카드 3사에서 탈퇴한 회원이 60만명을 넘어섰고 해지건수가 165만건, 재발급이 287만여건 정도라고 한다. 전체 정보유출 통지건수가 8500만건인 것을 고려하면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노령인구나 정보 취약 계층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 상황에 대응하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카드재발급은 피해자가 직접 카드사나 은행 창구에 방문해 신청을 해야 한다니 정보 유출 당사자의 타는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급한 놈이 움직이라'는 말인가.

예전과는 달리 정보가 돈이고 곧 힘인 시대이다.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 스마트 기기에 안티 바이러스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이나 앱을 설치해 보지만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정보를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 국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정조사를 실시해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을 마련하자는 논의가 있을 것 같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몇몇 사람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사태의 해결인 양 어물쩍 넘어가는 일이 이번에는 안 생겼으면 좋겠다. 또한 사실상 개인 정보의 최대 보고(寶庫)인 공공영역의 정보관리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보이스 피싱 이야기를 마무리하겠다. 이야기를 듣다가 지쳐서  지금 시간이 없으니 남부지청으로 직접 전화를 하겠노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물론 그동안 서울남부지청을 검색하고 그런 사람이 있는지 확인도 했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니 돌았니? 이래 가지고 밥 빌어먹고 살겠니?'였지만, 개그를 따라하는 재주가 없어서 속으로만 되뇌었다. 집에 와서 작은 딸의 시범을 들으며 연습해 보지만, 난 역시 개그는 안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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