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편집국장

90여일을 앞둔 6·4 제주지방선거가 여·야 중앙당의 충격으로 소용돌이에 빠졌다. 지난달부터 예비후보등록을 마친 후보들이 첫 관문인 '공천'을 통과하기 위해 유권자를 만나고, 정책을 발표하는 등 발품을 팔고 있지만 야권발 신당 창당 선언, 여권발 중진 차출론으로 제주지방선거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야권은 지난 1일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신당 창당을 전격 선언했지만 출마후보 등 지역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가 생략,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새정치연합이 '5대5' 합당 원칙에 합의했지만 공천과 관련한 구체적인 규칙이 정해지지 않아 양측 도지사·도의원 후보들이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중앙당의  논의 방향만을 유심히 지켜보는 실정이다. 중앙당이 향후 내놓을 경선 규칙에 따라 공천권의 향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중앙당이 마련한 경선 규칙에 출마 후보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탈당후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도 제주출신 원희룡 전 국회의원의 도지사 선거 출마 변수로 도당은 물론 후보들이 속앓이하는 형국이다. 중앙당의 원 전 의원 차출론에 이어 원 전 의원 역시 당초 불출마 입장에서 출마 가능성으로 선회하면서 혼란속에 빠졌다. 공천권을 쥔 중앙당이 당헌·당규에 따른 '상향식 공천'을 천명했지만 원 의원을 직접 도지사 후보로 결정하는 '하향식 전략공천'이 가능토록 제주를 '우선 추천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는 탓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나머지 출마후보들이 반발하면 야권처럼 탈당후 무소속 출마 시나리오도 예상된다.

때문에 제주도당은 4일 중앙당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여론조사 방식이나 전략공천으로 도지자 후보를 결정할 경우 부작용이 적지 않다면서 상향식 공천 원칙에 입각한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를 요청했다.

여·야 중앙당발 쇼크로 제주지방선거가 홍역을 앓으면서 지방정가의 걱정도 적지 않다. 공천권을 쥔 중앙당이 도지사·도의원 후보 선출방식을 결정하면서 제주정가의 공론화 과정을 생략,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에 예속시킬 수 있는 부작용 때문이다.

'선거의 꽃'으로 불리는 공천이 공정하고 투명한 상향식 경선으로 진행돼야 제주를 발전시킬 좋은 후보를 선택하고, 본선에서도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는 반면 중앙당이 지방정치를 통제할 목적으로 낙하산식 공천이 이뤄지면 중앙당의 눈치만 살피는 후보만 뽑히게 된다.  

이에따라 6·4지방선거가 제주발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제주지역의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할 유능하고 참신한 일꾼을 선택하는 막중한 책무가 여·야 중앙당에게 요구되고 있다. 다시말해 당원·도민들의 지지를 얻는 후보가 본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중앙당의 후원으로 결정된 후보는 본선 경쟁에서의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

이에따라 6·4지방선거가 제주에 대한 중앙집권의 폐해를 극복하고, 정치·행정 등 지방자치 전 분야에서 제주발전의 동력을 모색하는 '도민축제의 장'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 상향식 공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직선거에서 정당이 좋은 후보자를 추천하는 정당공천제도 역시 도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기 위해 정당 스스로 자신들의 정강정책을 후보자를 통해 제시하고,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여·야 중앙당은 윗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백성들이 동요해 떨어져 나간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깊이 새겨야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먹을 것이 풍족하고, 강력한 무기를 보유했다고 하더라도 신뢰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무신불립을 강조했다. 여·야 중앙당이 정당한 이유 없이 제주도민들에게 약속한 상향식 공천을 어기면 도민들의 믿음을 얻을 수 없을뿐더러 선거에서 패배하는 자충수를 놓게 된다. 차제에 도지사·지방의원 공천권을 시·도당에 이양하는 여·야 중앙당의 새로운 정치 결단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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