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5. 제주민요
특유 꾸밈음 등 부각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지역내 인식 전환, 전승·보전체계 구축 필요
제주는 섬이다. 육지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지다 보니 '문화 전파'에 있어서는 늘 더뎠다. 척박한 환경에서 삶을 꾸리는 사람들에게 여흥을 즐기는 것은 사치나 다름없다고 치부됐었다. 실제 그랬을까. 섬이었기에 다른 지역과는 분명히 다른 음색과 장단이 있었고 그것이 제주 사람들을 살게 했다. 고단한 작업 중간 땀을 식히며 누군가 먼저 던진 소리를 자연스럽게 받아 넘기고 했던 것은 하나의 문화가 됐다. 지난 1989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5호로 지정된 '제주민요'다.
제주 민요, 삶의 보고
'이여이여 이여도라 이여레 들베앙 녁이나 근제라'
과거 제주 여성들에게 쉴 틈은 없었다. 생활력이 강했다기 보다는 강해야 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아침 눈을 뜨자마자 허벅을 지고 물을 날랐고, 낮에는 밭에서 바다에서 작업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일은 끊이지 않는다. 곡식이 많지 않았던 환경 속에 가족들의 주린 배도 채우고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맷돌질이 필수였다. 자리를 잡고 앉아 어처구니 용도의 나무 손잡이를 돌리다 보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서로 잠을 깨워주고 제때 일을 마치기 위해 주거니 받거니 했던 것이 제주민요 '맷돌노래'다.
제주민요하면 1순위에 서는 '오돌또기'나 '봉지가' '산천초목'은 창민요로 분류된다.
관련 자료와 구전에 따르면 '맷돌노래'가 제주 여인들의 삶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했다면 오돌또기와 봉지가, 산천초목 등 창민요는 성읍 지역 여성들에 의해 전해졌다고 확인된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정의현 현청 소속 관기들에 의해 불리던 노래가 민간으로 전해지면서 널리 퍼지게 됐다.
민요의 고장으로 꼽히는 남도나 경기지역의 소리는 흥이 있고 화려하다. 주목받다 보니 전승 체계도 비교적 잘 잡혀 있다. 반면 제주민요는 다른 지역 민요와 달리 꾸밈음이 많지 않고 소탈한 것이 특징이다. 특유의 꾸밈음(시김새)는 화성(和聲)의 틀로 묶기 어려워 악보 작업도, 악기로 표현하는데도 한계를 드러내며 '사람'을 통해서만 전승되고 있다.
'소리'를 하는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오디오 파일'만이 덩그러니 제주 민요를 지키게 된다는 결론이다.
제주민요 '소리 그칠라'
이는 단순한 기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00년 보유자 조을선 선생, 2006년 전수교육조교 이선옥 할머니가 작고한 뒤에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제주민요의 '맥'이 끊길지 모른다는 우려는 '전승·보전 활성화' 목소리로 이어지지만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고(故) 이선옥 할머니의 뒤를 이어 전수교육조교가 된 강문희씨(41)를 주축으로 11명의 전수교육생이 '제주민요'를 지키고 있다.
강 전수교육조교는 정의고을 소리패 지도와 함께 20년 넘게 성읍초등학교에서 민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성읍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2달 일정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도 꾸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활동은 '마을 안' 일이다. 대부분 교육이 성읍마을내 전수관에서 이뤄지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참여가 제한적이다. 전수조교의 현장방문형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필요성도 제기됐지만 전승과 보존이란 두 마리 토끼를 이들 전수조교와 교육생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마을'이란 장치는 제주민요 전승에 유용하게 활용됐다. 지역 성읍초등학교에서 지난 2011년부터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국악조회'를 운영하며 전통과 거리를 좁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성읍초 학생들은 '허벅 장단'이란 아이템을 활용해 제주민요를 무대에 올리고 대중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문제는 '초등학교'를 벗어난 이후 연속성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까지는 지역 중·고등학교 연계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유야무야 사라졌다.
강문희 전수교육조교는 "'문화재'라는 틀이 어렵지 제주 전통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장치로 민요만한 아이템은 없다"며 "20~30대 젊은 세대들이 제주민요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공연 방식 등에 변화를 주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관점의 변화 모색해야
그동안 보유자가 없어 단절 위기에 처했던 제주민요는 올해 다행히 '전승 취약 종목' 꼬리표를 뗐다. 지난 2008년 4월 취약종목으로 선정된 이후 부단한 노력이 있었지만 '취약'을 내려놓는 것으로 한시름을 놨다.
이에 앞서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통해 '보유자 없는 보유단체'를 인정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이로써 제주민요 전승체계를 '개인'에서 '단체'로 전환할 수 있게 되는 등 10년 넘게 침체됐던 분위기에 새 전기가 마련됐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하다.
'보존회'구성을 놓고 제주도는 성읍민속마을보존회에 민요 분과를 신설한다는 계획을, 강 전수교육조교 측은 현재 교육과 시연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생을 중심으로 꾸려야 한다며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제주민요'의 기준을 확대해 지역 노동요 등을 포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가 하면 성읍지역에서 전수되는 노래를 제주민요로 편입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제주 안에서는 '전승·보존'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지만, 제주민요에 대한 관심은 사실 음악계 내부나 밖에서 더 적극적이다. 제주국제관악제에서 제주민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계속 등장하는 것은 누가 일부러 시킨 것이 아니라 제주만의 특성을 살리는 가장 유용한 장치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작품이 제주민요 자체가 생소한 외국 음악인들이라는 점은 제주민요에 대한 도내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연결된다. 고혜아 기자
"제주민요 전반을 '문화유산'이란 큰 범위 내에서 전승해나가야 한다" 좌혜경 제주발전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문화유산'으로의 제주민요 접근을 재차 강조했다.
좌 전문연구원은 "제주민요는 성읍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보전되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마을에는 유능한 소리꾼들이 많다"며 "성읍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중심으로 과거에 행해지던 소리판 전승복원 및 체험 프로그램들을 운영해 관광자원화하는 것도 전승 방안의 하나"라고 밝혔다.
이어 "오돌또기·산천초목·맷돌노래·봉지가 등 4곡을 제주민요로 한정짓지 말고 성읍들노래 등 성읍 마을에서 불려지는 노래 전반으로 요종의 범위를 확대시켜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좌 전문연구원은 젊은 세대로 제주민요의 '맥'을 잇는 작업이 힘들지만 충실해야 할 것으로 거듭 강조했다. 이를 위한 '공동의 전승 계기' 마련은 '필수'라는 것이다.
좌 전문연구원은 "아직은 한정된 전수교육을 도민 대상으로 그 범위를 확대시켜야 한다"며 "대학·기관 등에 위탁을 통해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성화시킨다면 제주민요의 전승 활동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혜아 기자
고혜아 기자
kha49@je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