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제주관광대학교 사회복지과 겸임교수, 논설위원

최근 가족의 생명까지 함께 빼앗는 동반 자살이 연이어 발생하며 사회복지시스템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복지가 빈곤층에 대한 안전망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송파 세 모녀의 불행한 종말은 우리사회 복지안전망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고 어려운 곳을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됐다. 식당일을 하다 다쳐 수입이 끊긴 어머니, 당뇨병을 앓는 딸, 신용불량자인 딸이 내린 결정은 우리를 착잡하게 했다. 이들만이 아니다. 40대 가장이 지체장애 딸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세상을 떠났다. 70대 노모와 시각 장애를 앓는 아들은 말없이 세상을 등졌다.

왜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가. 그 이면에는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환경, 문화와 가치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다. 보통은 개인이 처한 해결하기 어려운 삶과 사회적 모순이 만나는 접적들의 화학반응이 파탄에 이를 때, 자아가 이를 이겨내지 못하면 자살이라는 비극이 일어난다. 그러니 쉽게 절망하고 좌절하는 개인의 탓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계형자살은 그 배후를 살펴봐야한다.

우리사회는 외환위기 이후 소득불평등 확대로 인한 빈곤이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스템이라면 그 책임을 개인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그러기 때문에 생계형 자살은 '자살문제' 보다 '빈곤문제'로 접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사회의 복지안전망은 다분히 방어적·소극적이다. 올해 기초생활수급자는 전년보다 3% 줄었다. 4년째 감소추세다. 수급자들이 먹고 살만해져서가 아니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려면 충분히 가난해야 하고, 1촌 직계혈족은 물론 며느리, 사위까지 돈을 많이 버는 가족이 없어야 하며 정말로 일을 못한다는 사실을 증빙해야 한다.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긴급복지지원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제도는 취약계층에게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이 발생한 경우, 신속하게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우리나라 빈곤인구는 800만 명이나 되지만 기초생활수급자는 135만명 정도고 나머지 빈곤층 약 650만 명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이 위기상황에 놓였을 때 붙잡을 수 있는 동아줄이 긴급복지지원제도다.

그러나 이 사업의 예산집행률을 보면 2010년 87%에서 지난해 55%로 주저앉았고 올해 예산은 전년대비 49%나 삭감됐다. 보건복지부는 도움을 요청한 위기가구가 예상보다 적었다고 변명했다.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소극적으로 운영해 왔음을 스스로 자백한 셈이다.

복지안전망 제도가 이렇게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까닭은 돈과 인력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인력이 모자란데 충원이 어려운 이유도 예산 때문이니 결국 돈이 문제다. 이 돈은 국민의 세금이다. 우리사회 복지담론은 모두를 위한 보편적 복지로 흐르지만 증세담론은 꽉 막혀있다. 누구도 거론하길 꺼린다. 그래서 복지재정은 모자라고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지난 수년간 우리사회는 무상복지 잔치판을 벌려왔다. 그 뒤에서 취약계층들은 벼랑에 매달려 신음하고 있는데 말이다. 떨어지면 받쳐줄 그물망은 손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실을 뽑아 쓰지나 않았으면 다행이다.

복지재정을 늘릴 수 없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우선대상으로 복지를 행할 것이냐'다. 당연히 가장 어려운 사람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분별 있는 복지로 가야한다. 그래야 성장의 어두운 그늘에서 버텨낼 힘조차 잃어버린 이웃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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