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스님 자비정사, 논설위원

불교 종교인들은 지금 이 사회의 초심자들에게 불교를 너무 어렵게 설명하고 사회의 변화에 둔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불교는 어려운 가르침이고 멀게 느껴지는 종교라고들 말한다. 이에 불교 지도자들은 말한다. 불교는 쉬운 종교라고. 그러나 일반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한문으로 된 경전의 용어들이 어렵다. 무엇보다도 법당을 비롯한 사찰이 시민들을 위해 열려있지 않다고 말한다. 불교문화가 그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말이다. 불교가 시대에 맞춰 변화하지 않는다면 사회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정치가 그렇고 경제·문화 모든 면에서 사회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불교의 교리와 의식체계가 조선시대의 것을 탈피하고 현대인의 요구에 따라 적절하게 변화하지 않으면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일반 사찰의 모습도 변화해야 한다. 일반 사찰에서는 불교를 보살행을 실천하는 가르침이라고 불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데도 처음 사찰을 찾아 불교를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쉽게 열려있는 공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좀 더 배려하는 보살의 입장으로 변화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5비구(최초로 귀의한 다섯 명의 비구)를 위해 설하신 첫 설법을 살펴보면 양극단을 벗어난 중도(中道)의 길을 가르치셨다. 중도의 길을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부처님은 연기법(緣起法)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셨다. 그 연기법을 통해 이 세상을 바르게 보면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바른 견해를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도의 길이다.

부처님 당시의 세상 사람들에게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든 것이 신의 뜻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은 신의 뜻이 아니고  정해진 것도 아니라고 가르친다. 고정된 관념을 버리고 연기론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인간선언을 부처님께서 하신 것이다. 부처님 생존 당시의 부처님은 파격적인 개혁가이고 보살이고 사회를 개혁하려는 사상가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사회를 돌아보고 불교는 그 사회에 연기론적으로 잘 대처하고 있는가 분석하고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사회(society;community;the world)는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사회를 파악할 때 각각의 요소들(개체들)의 분석에 의해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적 사실들은 그 자체로 환원할 수 없는 실재성의 질서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의 전문적인 입장에서는 사회의 주요 형태를 분류해 과학적으로 이해햐려고 한다.

이 점에서 뒤르켐(Emile Durkhim, 1858~1917)은 모든 인간이 동일한 규칙에서 통합된 '기계적 연대'의 사회와 개인들이 보완적 활동에 의해 연결된 '유기적 연대'의 사회를 대립시킨다. 그리고 이 형태들의 주요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를 진단하고 개선하려 했다. 이것은 불교의 연기론적인 관점과 맞아 떨어진다. 불기 2558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면서 종교인들이 사회의 눈높이를 정확히 진단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이 구슬들을 현실이라는 사회 속에 잘 배열해 꿰어야 불교가 살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는 말이 있다. 지금부터 불교의 좋은 콘텐츠를 눈높이에 맞게 잘 맞춰 나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라도 현실에 맞게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꿈으로 끝나고 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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