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에게 있어서 내 집 마련이란 인생일대의 중대사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장기간의 계획과 준비가 따르는 일이다. 금융기관들이 내놓는 주택마련 저축들은 적어도 10년 이상을 구상하고 있다. 저축액이 차곡차곡 늘어나는 기간 동안 사람들은 착실하게 꿈을 키워 나간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이나 집을 지었다 헐면서 말이다.

우리나라의 전세제도는 이러한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계획과 준비에 상당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조금씩 모아서 전세금을 늘려가고 이사의 수고를 아끼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꿈에 그리던 집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보통사람으로서 이사라면 이골이 나도록 제법 많이 다녀 보았다. 김 상용 시인이던가.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라는 시를 읊조리며 정말로 기꺼이 이삿짐을 꾸렸다.

제주도로 오면서부터는 꿈 속의 집에다 밀감나무도 더러 심고 강아지도 한 두 마리, 닭도 여나문 마리 키워나갔다. 그리고 이왕이면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에다 터를 잡기로 했다. 한 60살쯤 되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그러나 살던 집이 팔렸다는 통보가 날아들고, 살 집을 위해 거리로 나서면서부터꿈도 나도 허망해지기 시작했다. 팔 집은 많은데 전세가 없었다. 전세금이 오를 것만 예상하고 거기에만 신경을 써 온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현상이었다. 이름하여 신구간, 구신(舊神)과 신신(新神)의 인사이동 기간이다.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전 3일까지 모든 신들이 하늘로 올라간 사이 깜쪽같이 이사해서 동티(액)를 면하자는, 그야말로 우리 조상님들의 순박한 발상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간중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늘의 신께 이사갈 집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선조들이 하신 일이니 아마도 깊은 뜻이 있을셨을 터이고, 그러므로 신구간은 나름대로의 의의를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겪는 신구간은 분명 문제가 있다. 첫째, 주택시장의 수급구조를 왜곡시켜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불이익을 제공한다.

집을 팔거나 세를 주고자 하는 이와 집을 사거나 세를 얻고자 하는 자가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면 서로가 최적의 만족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주일 동안 대부분의 거래가 집중되는 신구간의 시장구조하에서는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는 소수와 결과적으로 손해를 입는 다수가 존재하게 된다.

둘째, 사회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시장질서가 문란해진다. 서로가 계약하기로 약속을 하였다가도 중간에 누가 끼면 약속이 깨져버린다. 돈 얼마에 신의가 무너지고 본의 아닌 거짓말들이 분분히 오고간다.

셋째, 인간에 대한 예의가 사라지고 일부층에게는 생활의 불안과 좌절을 안겨준다. 육지부의 경우에는 집을 세놓을 때, 도배를 하고 부서진 데를 고치고 고장난 보일러는 수리를 해놓는다. 적어도 낯선 곳으로 이사하는 이에 대한 배려가 들어 있다. 하지만 내가 둘러본 이곳의 몇몇 집들은 살려면 하고 싫으면 말아라 식이다. 보는 이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고 가지지 못한 서러움을 더없이 가중시킨다.

신구간의 시작은 나름대로 진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면 제도도 달라져야지, 일주일의 기간이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이사를 하기에도 너무나 추운 때다. 입춘 너머 우수와 경칩까지를 신구간에 포함하면 어떨까? 혹시나 지금의 신구간 풍경에 개구리가 웃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이 왜 이런 집을 샀냐면,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신구간 덕분이다. 이제는 신구간의 해학도 조금쯤 바뀌었으면 한다. 어쨌든 없는 이들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미덕이 필요한 때이다. <허정옥·탐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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