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민 영국왕립건축사, 논설위원

우리는 평소 마음 속 깊이 존경하는 인물 한 명쯤은 갖고 산다. 일종의 롤 모델이자 등대와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평소의 존경심이 과한 기대 심리로 바뀌면 오히려 그를 망치기도 한다. 슈퍼맨이 돼주길 바라는 헛된 꿈이 정치판에 몰아 넣고 나면 결국 실망하는 것도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건설 회사의 신화이자 샐러리맨의 우상이었다. 드라마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를 이렇게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치인이자 행정인으로만 평가 받기 때문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어땠나. 청문회에서 날카롭게 질문하던 유능한 국회의원에서 말 실수나 연발했던 대통령으로 기억될 뻔 했다. 이 모두 우리의 지나친 존경하는 마음이 그들을 정치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어서다. 작금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줄 슈퍼맨쯤 되는 사람이 나타나주리란 헛된 욕심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잃었고 이번 선거 후에도 예외 없이 더 많은 희생양이 생길 지 모를 일이다.

필자에게 안철수 대표는 우상이었다. 그의 삶을 본보기 삼으며 살고자 했다. 의사 직을 그만두고 IT사업가로 성공했던 신화 덕분이다. 국내 최고의 학부 중에서 그것도 의과대에 입학해 교수직까지 올랐던 그는 진정한 엄친아였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는 두려움이 없었다. 낮에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로 일하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는 IT계의 슈바이처였다.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사회적 지위에 올랐으면서도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 믿는 일에 과감히 뛰어드는 그의 용기가 부러웠다. 필자같이 소시민들은 가진 것을 지키느라 있는 힘을 쏟기 마련인데 모든 걸 가졌던 그는 스스로의 신념 앞에서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물론 이 모든 스토리는 모두 그의 책에서 읽은 것이다. 심지어 그 책에 나온 다른 경영 서적들도 모두 주문해서 볼 정도로 필자는 열렬한 팬이었다. 요즘도 매달 직원들 월급 주느라 쩔쩔 매지만 건축설계 사무소를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부분 안철수 대표로부터 받았던 직·간접적인 영향이 컸다.

사회에 신념과 비전을 갖고 열심히 뛰는 것까지는 못하더라도 흉내라도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남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사는데 허비하지 않고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것의 결과를 평가 받을 날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이 시장 직을 양보하면서까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부턴 우리의 지나친 욕심 때문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요즘 그의 평소와는 다른 행보를 볼 때마다 정치가 얼마나 단단하고 변화하기 힘든지를 간접적으로 깨닫게 되면서도 한편 또 하나의 훌륭한 인물을 잃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또 하나의 영웅이 떠날 지도 모를 채비를 하고 있다. 그의 책을 통해 접했던 창의적인 생각과 도전적인 정신만 남기려 한다. 너무 큰 기대들이 그를 정치판으로 몰아넣었고 되돌리기엔 이제 너무 늦어버렸다. 의도하는 변화들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그렇다고 오래 기다릴 만큼 참을성이 많지도 않다. 기업가로서 신화를 창조했지만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못 바꿀 만큼 만만치 않은 것이 정치라는 건 이제 모두 경험했다.

기대치를 낮추고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면 비록 작게 나마 새로운 정치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 이상 또 하나의 영웅이 사라지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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