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랄땐 언제고 올리면 "선거영향" 커트

모 자치단체 6급 공무원인 A씨는 요즘 도통 일할 맛이 떨어졌다. A씨는 7급에서 6급으로 올라선지 10년도 더 된 ‘고참중의 고참 주사’다.

구조조정의 여파로 승진길이 막혔는데도 평소 똑소리나게 일을 해치우기로 소문난 그가 신바람이 나지 않는 것은 뭔가 하나 해보려해도 툭하면 좌절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좌절이 아닌, ‘차단’이다. A씨는 “상급자가 부서원들에게 ‘도대체 뭣들 하냐’며 다그칠 땐 언제고, 이제와서 전혀 딴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골치아픈 일을 만들지 말라는 상급자의 지시가 자치단체마다 잇따르고 있다. 사업계획안을 낼 때마다 중간에서 차단되기 일쑤다. 이런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최고 정책결정권자인 단체장 보다 국장·과장 등 고위 간부들이 대부분이다. ‘알아서 긴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정작 자치단체장들은 부하 직원들이 뭘 구상하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차단되는 기획안은 주로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걸려있어 자칫 민원을 부를 수 있는 사안이나, 사업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다.

눈앞의 효과가 기대되거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수 있는 사안은 거꾸로 국·과장들이 적극 ‘주문’하기도 한다. 다양한 명목의 여행이나, 사업비 지원, OO행사 등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모 기초단체 7급 공무원인 B씨는 “최근에는 차라리 고민을 안해도 되니까 좋다”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선거를 앞둘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됐던 이런 현상은 올들어 더욱 두드러져 ‘위민행정의 실종’을 우려하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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