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직 외과전문의, 논설위원

주말 오후 초록생명마을 '생명나눔텃밭'가꾸기를 마친 후 같이 나눈 공동밥상은 화려한 생명의 하모니였다. 메뉴 제목은 야생초 산채 비빔밥. 재료는 모두 푸드 마일리지 제로 초록생명마을 산이다. 식사준비 직전 바로 따온 가중나무와 섬오갈피 첫 순과 싱아 잎, 꿩 마늘은 생채로 들어갔다. 머위, 달맞이꽃, 음나무, 민들레, 원추리 등의 봄 잎들은 살짝 데친 뒤 숭숭 썰어 넣었다. 소스는 홈 메이드 고추장에 참기름 한 방울과 새콤달콤 묵은 고추 피클 국물 한 스푼. 야생초 산채 비빔밥 맛은 100점 만점에 95점이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 몸과 우리 정신까지도 결정한다는 주장이 있다.

수년 전 육식의 나라 몽골과 채식 중심의 스리랑카를 다녀온 후 이를 실감나게 느낀 적이 있다. 육식 사회는 살아 움직이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극도의 긴장과 때로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들이 공격적인 유전인자로 몸에 쌓였다가 현실에서 거친 성품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고 채식위주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스리랑카의 경우 그 반대의 현상을 사회전반에서 볼 수 있었다.

최근 젊은 귀농자의 증가와 더불어 땅과 건강한 먹을거리 그리고 텃밭 운동에 관심 있어 하는 도시민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이 쓰러져 가고 있는 한국 농업과 농촌에 생기를 불어 넣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차와 휴대전화는 없이 살아도 먹을거리가 없으면 못산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논이 없어지면 휴대전화와 차를 팔아 쌀을 사면된다는 논리다. 식량 무기화의 문제를 떠나 논과 밭 그리고 농촌의 존재는 단순한 식량의 문제만은 아니다. 땅과 흙 그리고 그 속의 작은 생명체의 존재가 환경과 먹을거리 문제를 넘어 인격 형성과 생명보존 문제, 건강한 공동체의 지속과 무관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실 속빈 강정 같이 여기저기가 부실한 나라에 살면서 그동안 우리는 기고만장했었다. 월드컵 4강에 올랐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한차례 세계를 휩쓸었다. 한국의 건축회사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가장 짧은 시간에 지었다고 자랑했다. 대한민국 조선소의 수주량은 세계 일등이었다. 깡통 두드려 시발택시 만들던 나라가 세계가 알아주는 자동차 수출국이 됐다. 최첨단 모바일 폰을 만드는 나라, 인터넷 망이 가장 잘 깔려있는 나라로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돈을 쫓는 일에 성공해 소위 제3세계 경제부흥의 모델이 됐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동안 정치·경제·교육·종교·언론·검찰을 막론하고 총체적 부패로 사회는 곪은 종창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조짐이 보이고 그동안 우리 삶을 지탱해온 원칙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우리 사회가 흔들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맘모니즘에 매몰돼 있는 동안 자연스레 삶 속에서 터득되던 인간의 자격과 정직성과 책임감을 우리는 잃어 버렸고 따뜻한 가정과 엄마의 밥상을 잃었다.

존경받아야 할 어른을 잃었고 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위정자를 잃었다.

봄에 얼굴을 내미는 초록 생명 같은 어린 영혼들을 그것도 한꺼번에 참혹하게 잃었다. 어쩌면 경제만능주의와 있는 자를 위한 규제완화정책과 더불어 은연중에 용인된 편법과 무사안일 무책임이 그 세를 키워가는 동안 도덕성을 잃은 자본과 무능한 정부, 영혼 없는 권력이 힘을 합쳐 채 꽃피워 보지도 못한 어린 생명들을 산채 물속에 수장시킨 셈이 된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그동안 우리 삶이 그리고 우리나라가 지향했던 표피적 가치들이 우리 사회를 어디로 몰아 가고 있는지 짚어 봐야 할 때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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