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는 현재의 축구 규칙을 만들고 경기방식을 확립시킨 ‘축구 종주국’이다.

1863년 축구협회 창립, 1888년 프로리그 출범 등 유구한 축구 역사를 갖고 있지만 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9차례 본선에 올라 66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한차례 우승했을 뿐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16강전도 통과하지 못하는 부진을 겪었다.

특히 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8강전에서 서독에 2-0으로 앞서다 2-3으로 역전패했고, 86년 멕시코 대회에서도 준결승에서 독일과 1-1 무승부를 기록한 뒤 승부차기에서 패한 바 있다. 96년에는 유럽선수권 4강에서 독일에 승부차기패로 주저앉는 등 독일과 지독한 악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유럽지역 예선에서도 잉글랜드가 독일과 같은 9조에 속하게 되자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독일이 직행티켓을 거머쥘 것으로 예상했었다.

예상대로 지난해 10월 독일에 0-1로 패배, 약체 핀란드와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졸전을 거듭하던 잉글랜드는 종주국의 자존심을 버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자국 출신이 아닌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스웨덴)을 영입, 명가 재건에 나섰다.

결국 올 3월 핀란드전 2-1 승리를 시작으로 알바니아·그리스를 연파한 뒤 독일과의 원정경기에서 5-1 대승을 거둠으로써 결국 골득실차로 독일을 제치고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10월 현재 FIFA랭킹은 지난해 12월 17위에서 8계단이나 뛰어오른 9위.

지역예선 초반 탈락 위기까지 몰렸던 잉글랜드가 우승후보로까지 꼽히는 이유는 미드필드의 데이비드 베컴(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독일전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새로운 축구영웅 등장을 알린 마이클 오언 등의 활약이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프리미어리그 선두인 리즈 유나이티드의 주전 수비수 리오 페르디난도(23)가 기존의 솔 캠벨(27·아스날)과 호흡을 맞추면서 수비도 한결 든든해졌고, 백전노장 골키퍼 데이비드 시먼(38·아스날)은 최종 예선 8게임에서 여섯골만을 내주며 골문을 잠궈놓고 있다.

종주국이라는 자존심을 버리는 데 무려 150년이나 걸린 잉글랜드가 내년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무대에서 다시 시험대에 올라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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