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 논설위원

요즘 같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곤혹스럽고 부끄러운 일인지 모른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그 무엇에도 견줄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이 엄청난 슬픔을 도대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백보를 물러서서 불의의 해난사고는 일어날 수도 있다 치자. 그렇지만 그 결과가 결코 이렇게까지 처절할 수는 없다는 것이 국내·외 이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요 평가다. 피해 당사자들은 두 말 할 여지가 없거니와 온 국민이 공분(公憤)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대통령은 비통에 휩싸인 가족들과 온 국민 앞에 통렬한 심정으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 당연한 처사이다. 그리고는 다짐하고 약속했다. 관련자를 엄중문책하고 관계 법령과 조직 체계와 관련 제도 등을 철저히 점검해 '국가개조' 수준의 초강수 처방을 반드시 내놓겠노라고. 마땅한 언명이지만 그렇다고 박수를 보낼 계제(階梯)는 아니다.

요즘 매일같이 관계된 전문 인사들이 각종 언론매체에 기고와 출연을 통해서 쏟아내는 백출한 지혜들을 요약해 보면 그 대부분이 법령과 규정·조직과 구조의 개혁 등 하나같이 메카니즘에 관련된 것들이다. 물론 그렇다. 그 부분은 세밀하고도 엄준(嚴峻)한 진단과 처방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메커니즘을 제아무리 새롭게 바꿔도 이것이 없이는 그것은 또 다시 도루묵이 되고 말 공산이 너무나 크다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민의식의 개혁'이다. 위의 메커니즘에 속한 것들이 '몸'이라면 의식개혁은 '혼(魂)'에 비견된다고나 할까. 이번 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대응하는 적절한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노력을 평가절하하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러한 노력에 단 한 치의 소홀함이 다시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다만 그러한 조치의 저변에는 건전한 국민의식이 최우선적으로 전제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럴진대 국민의식 개혁의 핵심요소로는 어떤 것들을 포함해야 할 것인가. 거기에는 생명존중사상을 최상의 가치로 삼고, 확고한 국가관과 애국심, 직임자(職任者)로서의 사명감과 충성심, 그리고 선진한국을 지향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높은 도덕성 등이 중심 가치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결코 진부(陳腐)한 공리공론(空理空論)이 아니다.

사실 이번의 참사는 법과 지침, 시설과 장비, 정보 시스템 운용 등 메카니즘에 엄청난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에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지마는 비록 그러한 여건 아래에서라도 관계자들에게 바로 위와 같은 국민의식만 제대로 확립돼 있었다면 사태는 놀라우리만치 극소화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 공분이 바로 여기서 일어나며 국민적 수치감과 죄책감도 이 점에 있다는 말이다.

마치 우선 나부터 살고보자는 듯이 서둘러서 빠져나온 그 늙은 선장에 비해 승무원은 맨 나중이라면서 자기의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벗어주며 탈출을 돕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그 어린 여승무원, 내 책임이 아니라며 빠져나갈 쥐구멍 찾기에 급급하고 있는 각 부문 피의자들에 비해 모든 책임은 수학여행 단장인 나에게 있다며 스스로 목숨을 버린 교감, 극명하게 대립되는 이 두 사람의 행동에서 우리는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원점에서 다시 배운다. 살아서 부끄런 목숨이 있는가 하면 죽어서 거룩한 목숨이 있음을.

나는 이 상황에서 그래도 끝내 교육에 기대를 건다. 이토록 소중한 국민의식교육, 과연 어디의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교육이다. 그래도 교육은 다시 일궈야 할 소중한 텃밭이다. 그러나 잊지는 말자. 그 숭고한 여승무원뿐만 아니라 부끄런 선장도 분명 이 나라 교육의 소산(所産)임을. 그 무엇으로도 슬픔을 당한 이들의 아픈 가슴을 위로해 드릴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못다 핀 고귀한 넋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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