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 교장, 논설위원

며칠 전, 삼양 원당봉 불탑사에서 '기황후의 5층 석탑'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공녀(貢女)에서 궁녀로, 그리고 마침내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기황후(1315년?~1369년)가 아들을 낳기 위해 '북두칠성의 기운이 비치는 3첩7봉의 명당(明堂)'을 찾아 쌓았다는 5층 석탑.
 

제주 고유의 현무암으로 만든 이 탑에서는 동네어른을 보는 것 같은 소박함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함께 온 일행들에게 "기황후처럼 이 석탑이 우리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 것 같다고 믿는 분 계십니까?"라고 묻자 서로 눈치를 보더니 어르신 두 분이 수줍게 손을 들었다. 일행 스물다섯 분 중 두 분, 내 마음을 알아준 것처럼 반가웠다.
 

프랑스에서 몇 명의 의사들이 실험을 했다. 커다란 상자 가운데 마음대로 움직이는 로봇을 갖다놓았더니 그야말로 제멋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더란다. 이번에는 상자 바깥에다, 알에서 막 깬 병아리를 갖다 놓았다. 태어날 때 처음 봤던 그 로봇을 어미로 알고 있는 이 병아리가 로봇을 계속 바라본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하겠지만, 놀랍게도 이리저리 제멋대로 움직이던 로봇이 병아리가 있는 쪽으로만 움직인 것이다. 무생물인 로봇이 병아리 쪽으로 동선이 쏠린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혹시나 잘못된 실험이 아닌가 싶어 10년 동안이나 조건을 달리하면서 실험한 결과 병아리 쪽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70%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실험이 곧 '감응(感應)'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기원하면 상대방에게 마음이 통하고 그를 움직이게 한다는 감응. 혹자는 비과학이다, 미신이라고 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오감(五感)은 세상만사를 다 감지하지 못한다.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게 얼마나 많은지조차 우리는 아직 모른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자신을 추켜세우는 사람들에게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나는, 세상의 진리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그대로 놓여 있는 바닷가에서 조금 동그스름한 조약돌을 찾았거나, 보통 것보다 더 예쁜 조개를 주웠다고 좋아하는 작은 소년에 불과합니다".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음속에 간절한 소망 하나씩은 간직하고 기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더욱 좋겠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공통분모를 가지는 간절한 소망과, 그 소망이 이루어지리라는 낙관적인 희망까지도 공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는 이런 나를 고리타분하다고 타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생각한다. 1950년대의 보릿고개를 견디며 1960~70년대의 가난까지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우리에게는 '잘 살아보자'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걸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던 덕분이라고 말이다.
 

지금은 우리 가슴에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국민교육헌장. 일본잔재다 뭐다 해서 없애버렸지만, 그 속의 문구와 덕목(德目)들은 한때나마 우리에게 행동의 지표가 돼 주었고 잘못된 쪽으로 가려는 마음을 바로잡아주는 길잡이가 되기도 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가슴속엔 탈무드가 있어서 그들에게 힘을 준다고 들었다. 우리가 그토록 자조(自嘲)하는 조선이 임진·정유왜란을 이겨내고, 정묘·병자호란의 수모를 겪고도 견뎌냈던 것은 500년을 관통한 선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다만 그 '화석화된' 선비정신을 꾸준히 수정하고 보완해가는 노력이 없었기에 결국엔 조선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어 버렸지만.
 

이제는 우리들 가슴속에 간절한 소망을 하나씩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소망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들 가슴에 한국인으로서 같은 꿈을 간직하고 함께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분명 더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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