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민 제주발전연구원장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도공(悼公)에게는 사마위강(司馬魏絳)이라는 유능한 신하가 있었다. 그는 춘추시대 12개 나라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당시 뛰어난 전략과 외교술로 진나라가 천하통일의 패업을 이루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정나라는 진나라의 화의로 침략을 당할 위기에서 벗어나자 도공에게 감사의 뜻으로 값진 보물과 궁녀를 선물로 보내왔고 도공은 이를 사마위강에게 하사하려고 했다.
 
그러자 사마위강은 이를 거절하며 도공에게 "편안할 때에 위기를 생각하십시오(居安思危), 그러면 대비를 하게되며(思則有備), 대비태세가 돼 있으면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有備則無患)"라고 말했다.
 
항상 준비를 하면 근심이 없어진다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고사성어가 여기서 유래됐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일 조선 선조때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이 채택돼 실제로 병력이 양성이 됐다면 과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까.
 
선조실록에는 1583년 어느 날에 국방을 책임지고 있던 이이가 선조를 찾아 "나라가 오랫동안 태평하다 보니 군대와 식량이 모두 준비돼 있지 않아, 오랑캐가 변경을 소란하게만 해도 온나라가 술렁입니다. 지금대로라면 큰 적이 침범해 왔을 때 어떤 지혜로도 당해 낼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이이의 10만 양병설은 조정에서 격론 끝에 침략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무산되고 말았다. 결국 1592년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7년 동안에 걸친 전쟁으로 온 나라는 폐허가 됐으며 숱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두가지의 얘기가 적절한 비유는 아닐지 몰라도 유비무환의 자세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것은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도 두달여가 지나고 있다. 나라 전체가 이같은 악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쌓여왔던 폐단을 종합적으로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자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불러온 참사라는 점에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을 느껴야할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 정책은 모든 정책에서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 따라서 재난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대책과 예기치 않은 사고발생시 위기관리 대응시스템에 따라 실질적인 구조·구급활동을 전개하기 위한 철저한 현장훈련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제주발전연구원이 지난달 22일 제주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제주지역 위기관리 실태 및 향후 발전방안에 대한 세미나에서도 전문가들은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재난 발생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재난발생에 따른 위기관리 대응시스템이 마련이 돼 있으나 사고 유형별로 수립됐기 때문에 종류가 3000여 가지가 넘어 현장에서 대응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언급했다.
 
예기치 않은 재난과 사고가 반복되지 않고 제주가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예방대책과 철저한 현장훈련이 전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역량이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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