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충남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논설위원

개인과 비슷하게 사회도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여건변화에 맞추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체를 막으려면 한 번씩 자극이 필요한데, 이번 도지사 선거는 그런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
 
새로운 사람이 곧 새로운 접근방법이라는 등식이 늘 성립하지는 않으나 새 사람이 새 접근을 시도할 개연성이 높다. 만약 지역사회가 남달리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응해 사고나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에 능하다면 누가 도정을 맞는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사회의 내부적 변화가 빠른 편이 아니다. 
 
주민수가 많지 않아 학연·혈연 고리가 매우 흔하다. 이는 상부상조하는 미풍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역효과도 낳는다. 지난 20년 넘게 3명의 도백경력의 정치인들이 지역의 정치를 지배해왔다. 물론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던 것일 수 있으나, 그 동안 맺어진 연고가 더 중요한 장수의 비결이라는 의견이 많다.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빠른 외부 변화에 불안감을 느껴 익숙한 인물을 선택해 바람막이 역할을 기대했던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익숙한 동네 어르신 같은 분들이 도정을 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지역의 갈등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 동안 제주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풍부한 행정경험을 자부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롭고 복잡했음을 반증한다. 
 
이번 선거에서 주민들은 새로운 선택을 했다. 도지사 당선인의 활발한 중앙무대 경력으로 지명도가 높았던 것과 동시에 기존 지역 정치지도자들이 그 동안 여건의 변화에 걸맞은 비전 제시나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판단을 반영하는 선택으로 여겨진다. 당선인은 지역에서의 활동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출된 것은 여러 현안들에 새로운 접근방법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이라라. 
 
이번 결과가 세대교체에 대해 시사하는 바도 흥미롭다. 지난 선거에서 역시 오랜 기간 서울에서 경력이 화려했던 후보가 근소한 표차였으나 낙선했었다. 경륜 보다는 새로운 발상을 할 개연성이 높은 인물을 원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 분야에만 국한해 보아도 새 지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이 녹록치 않다. 환경보존과 개발, 개발의 속도, 방문객 증가에 걸맞은 사회자본 확충, 중국자본유입, 시장개방 추세와 지역 1차 산업 경쟁력 확보, 지역 일자리 창출 등 만만한 것이 없다. 이념적 거대담론이나 감성적 배타적 정서를 경계하면서 실사구시의 발상과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아울러 조기에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내려는 과욕도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4년의 시간이 있다. 
 
제주는 타지역에 비해 고용, 지출 등의 측면에서 정부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런 사정으로 지역 공무원들이 정치적 외풍과 선거에 노출되기 쉽고 부작용도 많았을 것이다. 향후 달라진 선거풍토로 이런 관행이 단절된다면 그 자체가 큰 성과일 것이다. 
 
주민들 역시 기대 수준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여러 복잡한 현안들을 일거에 해결하라는 주문은 지사가 아니라 마술사에게 할 일이다. 사안의 완급을 조절해 필요한 일들이 처리되는 것을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끝으로 이번을 계기로 진정한 선거관행의 변화와 세대교체를 이루어 앞으로 친소관계보다 정책능력에 초점이 맞추어진 유권자 선택이 되풀이 된다면 이는 매우 긍정적 성과이다. 새 도정의 분발과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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