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편집국장

원희룡 도지사가 등장하면서 제주사회의 화두로 '협치(協治')가 떠올랐다. 원 지사는 지난 6·4 도지사 선거의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함께하는 수평적 협치(거버넌스) 체제 구축'을 제1공약으로 제시했다. 
 
도민들에게 낯선 용어이지만 원 지사가 민선6기 도정운영의 나침반으로 제시한 '협치'는  10여전부터 지방자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주민참여시스템 확충 방안으로 제시됐다. 도지사나 공무원이 정책 결정을 주도했던 '관치(官治)'로는 지방자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기에 주민들이 정책 입안·결정 및 집행 과정 전반에 깊숙이 참여해야 한다는 대안이 형성됐다.  
 
협치는 원 지사는 물론 소수 권력자의 자의적 판단과 즉흥적 결정을 배제해 투명하고 합리적인 논의를 보장하는 것이기에 우려도 적지 않다.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논의 과정에서 갈등·대립이 심화, 의사결정 단계부터 많은 자원과 도민역량이 실험적으로 투입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심지어 협치 참여자마다 자신의 목소리만 앞세우면 '사람이 열이면 주장도 열'이라는 백가쟁명(百家爭鳴)식의 소모적 논쟁만 되풀이되면서 도민역량만 고갈시킬 위험도 적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도정 운영 방안으로 제시된 협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틀을 바꾸면서도 주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진정성을 갖추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도민들과 협력하고 소통하면서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주민과 함께 행정을 수행하는 진정한 협치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빚어진 행정시장 첫 인선은 도민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한 '협치'의 사례로 지적된다. 원 지사가 이전 도정과 달리 행정시장에게 종전 4개 시·군 기초단체장 수준의 권한을 대폭 이양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도민과 소통·공감할 수 있는 인선 절차 보다 사전 검증기회를 차단하는 이전 도정의 '낙점' 관행을 모방한 탓이다.
 
공모 마감직후 원 지사의 낙점 후보가 임명될 것이라는 '내정설'이 제기되면서 그 면면을 살피려는 주민들의 궁금증이 증폭됐다. 제주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들에게 봉사할 행정시장이 기초단체장 수준의 생활행정·중앙절충 수행능력을 갖췄는지 등을 사전에 검증하려는 권리를 표출했음에도 원 도정은 이전 도정처럼 비공개로 일관, '불통'의 오명을 자초했다.
 
특히 내정설이 나돌았던 이지훈·현을생씨가 8일 각각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에 임명된 직후 원 지사가 인선 배경을 밝혔지만 주민들의 신뢰 회복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임명직의 행정시장이라 할 지라도 기초단체장 수준의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사전에 내정자를 주민에게 미리 알리고, 그 내정자들의 자질 및 정책수행 검증 기회를 판단토록 한 협치의 절차를 생략한 탓이다. 
 
사실 도지사가 권한을 독식한 수직적 통치하에서는 행정시장의 자질 검증은 무시됐다. 행정시장들은 도지사의 지시대로 인사·예산권을 행사하면서 임기도 보장되지 않는 대리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도지사가 권한을 도민과 함께 나누는 수평적 협치체제에서의 행정시장 인선 절차는 도지사 1명의 판단과 언행이 정책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수직적 통치의 집권방식에서 벗어나야한다. 물론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상 행정시장 인사청문회가 법령에 명시되지 않아 위법성 논란이 있다는 도정의 주장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예고제'를 적극 활용하는 인식전환이 수평적 협치체제 실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법령에 얽매이면 공무원이 정책을 결정하는 관치가 지방자치를 채움으로써 수평적 협치는 설 곳이 없다. 법령의 범위내에서 주민과 함께 행정을 수행하는 수평적 협치 실현은 원 지사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협치정책도 이번 행정시장 인선 과정처럼 주민들의 참여 기회를 차단하면 전임 도정의 통치로 변질될 수 있다. 협치와 통치의 변곡점은 행정시장 검증 기회를 주민에게 보장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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