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그리고 자폐

허옇게 동이 튼다. 그의 눈은 밤새 한 화면만을 응시하고 있다. 하얀 종이 위에 흑연으로 그려놓은 선 하나. 손가락을 문지르기를 수 천번. 종이의 미세한 결 사이로 스며든 흑연은 검음의 이미지를 벗어나 기묘한 울림을 던져준다.

선 하나에 마음 속의 형태를 담는 사람. 경주 한 사찰에 딸린 퇴락한 서당에서 세상과 절연하듯 살면서 드로잉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조각가 김근태의 작업실 풍경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기억으로 시간에 저항하며 힘겹게 살고 있다. 완전히 몸이 탈진된 후에야 멈추는 그의 작업은 차라리 비의적 종교다.

박영택(경기대 교수)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우리 시대가 가진 보편적 관습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기이다.

하지만 그가 그려내는 10인의 예술가들의 작업실 풍경은 흔히 말하는 전원 속 아틀리에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경기도 광주에서 목수 일로 밥 벌어 먹으며 그림을 그리는 김 을, 조각을 통해 시간의 그늘을 찾는 박정애, 그리고 매일 팔이 떨어지도록 그림만 그리는 염성순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풍경은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치열한 자기 응시를 보여준다.

철저한 자폐로 자신을 몰아 세우며 그림 속에다 자신의 진액을 쏟아 붓는 이들의 이야기들은 살아 있음에 대한 보고서다. 세상의 고통과 마주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들은 모두 화단의 관심에서 벗어나거나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바다 위, 그 막막한 곳에서 선원으로 일하며 자신의 생이 육화된 바다를 그려내는 청도나 황토를 재료로 그립고 서러운 추억을 빚어내는 정일랑 등 저자가 보여주는 일련의 예술가들을 만나는 것은 기쁨이다.

저자는 10여년동안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만난 작가들 가운데 격정적인 삶을 보여주고 있는 그래서 지금의 거품 같은 화단에 하나의 비수로 나타나는 이들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떠남과 떠돎

저자가 만난 작가들은 하나같이 떠돌아다닌다. 그러나 그들의 떠돎은 낭만적이고 자연 친화적 떠돎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내쫓김의 다른 표현이다. 바르비죵으로 간 밀레, 엑스 지방의 세잔,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다 죽어간 고흐, 타히티로 간 고갱 등이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스스로를 고독의 공간으로 던졌듯이.

이 책의 미덕은 이렇다. 작가들의 작업실 풍경과 그들의 순수한 이미지를 포착해낸 김홍희의 사진을 통해 그들의 예술을 향한 격전의 현장을 훔쳐보는 기쁨. 그리고 그들이 전쟁을 치르듯 만들어낸 작품들을 감상하는 묘미. 이 두 가지 이외에도 이 책이 전하는 의미는 많다.

세상의 모서리에서 겨우 버텨나가는 지상의 방 한 칸에서 자신의 내면과 맞닥뜨리며 만들어내는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는 일은 일상에 치이고 시간에 휘둘리는 우리에게 떠남과 떠돎이라는 잃어버린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림 그리는 일이 수완 좋고 인맥과 학연을 이용하는 비즈니스로 전락한 시대’에 아직도 이런 이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축복이며 불행이다.

국전에서 입선해 추천작가가 되고 전시회를 가져 경력을 쌓고 상업적이라는 것을 시류라는 말로 적당히 표현하며 행세하는 한국 화단에서 이들은 아마도 계속해서 철저히 소외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떠남과 떠돎이라는 고독의 순환을 마다 않고 그려낼 수 없는 것조차도 그려내야 하는 자기와이 싸움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희망 그 자체로 다가온다.

절대 고독의 순간. 떠남과 떠돎의 처연한 운명을 마다 않는 열 명의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부박한 세속사에 힘겹게 떠 있는 상록수 이파리 하나를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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