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전 애월문학회 회장·시인·논설위원

나의 똥막사리에 경사가 났다. 내가 흑비둘기라고 애칭을 붙인 오골계가 병아리를 깐 것이다. 애초에 토종 오골계는 부화용으로 들였는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덟 개의 알을 품더니 다섯 마리의 병아리를 부화시켰다. 육계는 알을 품지 않는다. 예전 토종에 대해 양종이라고 불리는 육계는 몸무게가 무려 2㎏ 정도로 살팍진데다 한 달이면 23~25개 의 알을 낳으니 생산성이 높은 상품이긴 하다. 하지만 사람의 필요에 따라 모성본능이 거세됐는지 알을 품는 시늉으로 며칠 꾸꾸대다가 만다. 천적이 없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 자연은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변형돼갈까.
 
나는 요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랴부랴 똥막사리로 향한다. 밤새 병아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걱정이 앞서서다. 같은 병아리라 하지만 기계로 부화된 상품과 어미가 노심초사 제대로 먹지도 않고 꼬박 스무하루동안 품어서 나온 것과는 느낌이 영 다르다. 그것은 어미닭의 모성이 너무 눈물겹고, 어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병아리들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어미는 어린 것들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낟알 한 개를 보아도 구구구 병아리를 불러서 먹인다. 분절도 모르는 것들이 언제 터득했는지 양발을 번갈아가면서 흙을 파헤쳐 낟알을 쪼거나,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지 못하는 풀을 식별하는 것이 여간 가상치가 않다. 시간이 돼 피곤할 즈음이면 흑비둘기는 복숭아나무 그늘에 새끼들을 품어 재운다. 그러나 세상이 신기한 병아리들은 어미 품에서 노란 얼굴들만 내밀고 나를 말똥말똥 쳐다본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좀 만지려하면 어미는 여지없이 나의 손을 콕콕 쪼는 거다. 평소에는 내 무릎에도 스스럼없이 오르는 것이 병아리들에겐 손가락 하나 못 대게 한다. 어쩌다 까치라도 나타나면 사뭇 난리가 난다. 병아리들은 본능적으로 구석구석에 숨고 어미는 털을 있는 대로 세우고 꼬꼬댁 꼬꼬댁 까치를 향해 뛰어오르며 죽을힘을 다한다. 나는 이 극성스런 모성을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한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평생을 밭고냉이로 사셨다. 나이 47세에 홀로 되셨는데 자식들 '홀어미 자식'이란 소릴 듣게 안하려고 양부모 있는 집에서도 안 보내는 중·고등학교를 보냈다. 어머니는 네 오뉘를 품에 품고 암탉처럼 빨빨대다가 내가 중2되는 삼월 초 5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고운 옷 한 번 입을 새 없이 동쪽에서 꿔다가 서쪽 빚을 갚고, 서쪽에서 꿔다가 동쪽 빚을 갚고는 가을이면 많지도 않은 밭의 소출을 팔아서 빚을 갚았다. 그러고는 춘궁기 내내 쫄쫄 배곯고 살았던 기억이 새롭다. 하나님이 손이 모자라 어머니를 세상에 보내셨다 하던가. 
 
'고졸인 내가 미술실기교사전형에 붙었다는 통보를 받고 나는 초등학교운동장 100m 코스를 단숨에 달렸다. 소나무 아래 앉았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거였다. 어머니, 못난 아들 첫 월급으로 빨간내복 한 벌 입으시고 김이 펑펑 오르는 하얀 쌀밥 한 상 잘 잡숫고 가시지 그랬어요' - 시 '빚진자'의 일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옛적엔 배만 부르면 온 세상이 편안해질 것 같더니, 남아도는 음식쓰레기가 문제가 되는 시대에 편안은 간곳없고 삶이 그냥 싸움하듯 살벌하다. 현대판 고려장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뉴스거리가 되고, 부모자식의 관계, 부부의 관계가 실종되고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아빠가, 엄마가 제 어린 것들을 살해했다 한다. 언제부터 우리 아이들이 떼어내야 할 혹이 되고 손쉬운 분풀이 대상이 되고 말았는가. 힘없는 것들이라고 포악을 당할 때 그 어린 눈에 아빠나 엄마는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내가 천하에 몹쓸 놈이 된 듯 숨이 막혀온다. 
 
더, 더, 더 가지고 있어도 그 위에 더 쌓아야 하고 물질문명과 반비례로 정신문명이 빈한해가는 사회에서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어디 내 할일이 없을까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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