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위원

"1학년 애들은 정말 좋겠어요"
 
얼마전 기말고사 공부를 하던 중학교 2학년 아들의 사뭇 억울하다는 듯한 말이었다. 이유인즉 지금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2학기부터 자유학기제로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1학기 기말고사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2학기 시험 생각이라니. 아이들에게 시험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는 정말 엄청난 모양이다.
 
도내 전 중학교가 오는 2학기부터 1학년을 대상으로 자유학기제를 시행한다. 한 학기동안 아이들은 중간·기말고사 등 지필고사를 보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은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창의적이고 자율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 그 내용은 학교생활기록부에 서술형으로 기록되지만 고입에는 반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토론, 실험, 실습, 현장체험, 진로탐색 활동과 동아리, 예술·체육 활동 등도 강화한다. 이를 위해 국어, 영어, 사회 등 기본교과의 수업시수도 조정할 수 있다. 
 
취지대로만 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아이들은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과도한 입시경쟁 교육에서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진로에 대한 자유롭고 진지한 탐구를 통해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 이같은 이유로 자유학기제의 도입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지금의 입시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학기제 동안 아이들의 학력이 떨어질 것이란 학부모들의 걱정 때문에 오히려 사교육이 더 심화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사실 경쟁위주 교육체제에 대한 고민은 우리 교육이 풀어야 할 최대 난제다.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있다. 1999년 이해찬 교육부장관 시절 '게임만 잘해도 대학에 가게 하겠다'며 대입제도를 개선했다. 바뀐 대입제도가 처음 적용되던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학습 부담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특기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대학은 드물었다. '이해찬 1세대'들은 입시에서 재수생들에게 고전했으며, 취업에서도 밀렸다. 아이들은 절망했으며 결국 '단군이래 최저학력'이란 비아냥과 함께 이해찬 세대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분분하다. 
 
이웃 일본에서도 이해찬 세대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바로 '유토리 세대'다. 유토리는 우리말로 여유를 뜻한다. 주입식 경쟁위주 교육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학습시간을 대폭 줄이고 개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시도됐다. 하지만 역시 결과는 참담했다. 아이들의 성적은 현저하게 떨어졌고, 사회에서도 만사에 의욕이 없는 8만엔(88만원) 세대가 양산됐다. 교과서는 다시 두꺼워지고 학습시간은 늘어났다. 
 
아이들을 입시경쟁에서 벗어나게 하고 창의와 개성을 살리는 교육이 결코 잘못된 것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하고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식과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상이 좋아도 현장에서 실현될 수 없다면 소용이 없다. 교육제도의 수요자는 아이들이다. 어른들의 이상만으로 손댔다가 안되면 그만이라는 식이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이다. 지금의 경쟁과 입시 위주 교육제도의 개선을 위한 새로운 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실험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를 시행하기에 앞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고보니 지금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이석문 교육감이 밝힌 '고교체제 개편'을 처음 적용받게 되는 세대이기도 하다. 내 아이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새로운 교육제도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안타까워할 일인지, 아니면 안도해야할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전 학년들보다는 분명 다른 교육체제를 경험하게 될 지금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훗날 "우리는 참으로 축복받은 세대"였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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