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앤팡> 제주미학기행
[김유정의 미학기행 멋과 미] 61. 돌담의 재료

▲ 빌레 사이의 작은 밭 닥르겡이.
제주 현무암 일러 '곰보돌'…가스 함유량 많은 용암 산소 만나 기포 생성
빌렛돌 거북등 같은 다각 모양으로 돌담 쌓기가 수월, 귀가 잘 물려서 견고
 
화산 풍토의 섬
 
제주 현무암을 일러 곰보돌이라고도 한다. 화산폭발시 용암에 가스 함유량이 많아 산소를 만나면서 기포가 생긴 때문에 마치 곰보처럼 작은 구멍들이 돌 속에 쏙쏙 생겼기 때문이다. 돌담의 재료는 마을마다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가장 흔한 돌담이 이 곰보돌담이다. 그렇다면 곰보돌은 어떻게 구하는가. 저 드르팟(들녁)에 종횡으로 쌓은 돌담의 재료는 어디에서 나온 걸까.
 
먼저, 1950m 한라산을 편의상 수직으로 상·중·하 3등분하게 되면 제주의 돌담 분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단 지역은 한라산 정상부와 산악지대로 암벽이 많고 그 암벽에서 이탈돼 구르는 돌들이 자연 상태로 남아있고 숲이 많은 지역에 속한다. 이 지역은 간혹 4·3사건 때 난리를 피해 숨어 살았던 비트용 돌담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중간 지역은 목장지대로 상잣, 중잣, 하잣을 가르는 가로 돌담이 있고, 과거의 10소장(所場)을 구분하고자 세로로 쌓은 캣담과 10소장 체제가 사라진 후에 마을 공동목장을 운영하면서 마소를 기능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쌓은 다양한 캣담과 바령팟 돌담들이 있는 곳이다. 하단지역은 해발 200m 이하의 경작지와 마을, 해안에 이르는 지역인데 밭담이 마을을 향해 구불구불 줄을 잇고, 집담, 올레담이 서로 연결돼 독특한 문화경관을 창출하는 곳이다. 사실상 농경과 어로가 병행되는 삶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돌담의 비중은 당연히 상·중·하 지역 가운데 하단지역에 쏠려있다. 돌담의 경관은 적어도 마을에서 한라산을 향한 방향으로 2㎞ 정도에 펼쳐진다. 중산간 지역에서 해안마을을 바라보게 되면 곳곳에 길게 흘렀던 검은 암반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흐름은 오랜 세월 지속된 경작지 개간 때문에 중간 중간 끊겨 있지만 각도로 보아 그 검은 줄기가 바다에 이르러 멈췄다는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해안에는 더는 갈 수 없었던 용암의 머리가 물에 잠겨 있다. 수많은 여(礖)들은 용암이 흐르다 부풀어 오르다 터진 투물러스의 일종으로 생각하면 된다.
 
생빌레, 돌담의 원천
 
생빌레는 암반지대를 뜻하는 제주어로 빌레라고도 한다. 밭이나 해안가를 자세히 보면, 이런 빌레들이 많이 분포돼 있다. 현무암질 용암은 크게 파호이호이 용암과 아아용암으로 구분하는 데 파호이호이 용암과 아아 용암은 원래 폴리네시아 말이다.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이 표면이 편평하고 새끼줄 구조가 잘 나타나는 용암을 파호이호이 용암으로, 클링커 층이 덮여있는 거친 표면의 용암을 아아용암이라고 부른데서 기인한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제주의 빌레 암반의 모습과 같다고 하여 빌레용암이라고도 부른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경작지와 해안지대에 널리 분포돼 있으며 아아용암은 중산간 지대의 곶자왈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경작지 돌담이나 해안가 주택의 월파(越波) 방지용 돌담, 혹은 포구의 우람한 돌담은 투물러스(Tumulus)나 프렛셔릿지(Pressure Ridge), 혹은 빌레의 모서리를 깨거나 자연 파쇄된 것들로 쌓은 것이다. 투물러스는 뜨거운 용암이 흐르다 용암이 모이면서 부풀어 오르다가 갑자기 내부의 가스 분출하여 바케트처럼 터진 것으로 용암의 겉 표면에 새끼줄 구조와 거북등 모양의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 프렛셔릿지(Pressure Ridge)는 용암이 흐르는 과정에서 가스가 새면서 그 압력으로 굴곡을 이룬 형태이다. 
 
우리의 눈에는 투물러스(Tumulus)나 프렛셔릿지(Pressure Ridge)나 파호이호이 용암 모두가 생빌레로 보인다. 생빌레는 말 그대로 땅에 깊이 박힌 살아있는 돌이다. 생(生)은 '살아있다' '생생하다'라는 뜻으로, 생이빨, 생나무, 생이별, 생밧(한번도 개간하지 않은 밭)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싱싱한 날것 그대로'라는 삶의 리얼리티가 담겨있다. 
 
생빌레의 돌은 석공들에게 신성시 여겨지는데 무덤의 상석(床石)이나 대석(臺石)을 만드는 데 먼저 쓰인다. 석공은 생빌레가 있는 밭이나 야산(野山) 주인을 찾아가 허락을 받은 후에 의례용 돌 재료를 캐서 집으로 운반하여 다듬는다. 그러나 생빌레에서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돌 재료를 구하지만 방앗돌이나 석상과 같은 큰 돌 재료는 돌산에서 캐야 한다. 제주어로 이런 돌산을 '서르릭'이라고 한다. 간혹 동자석 같은 석상용 재료는 바당(바다)의 빌레에서 캐지만 염분이 스며들어서 그런지 풍화에 약하다. 사실상 석공들은 흙속에 오래 묻혀있는 밭의 생빌레를 선호하는데 그 돌이 쌩쌩하게 살아있어서 아주 단단하기 때문이다. 
 
생빌레가 많은 지역의 밭들은 암반을 피해서 흙 있는 중심으로 돌담을 쌓기 때문에 자유곡선 형태의 돌담이 발달해 있다. 군데 군데 빌레 때문에 이루어진 작은 밭들이 많은 데 이런 밭을 가리켜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닥르, 달레, '달렝이, 닥르겡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작은 밭에 반대되는 말로 멜진밧이 있다. 이 닥르겡이의 주변 빌레를 깨면서 점차 확장한 것이 바로 벨진밭(큰밭)이다. 
 
환경적으로 척박한 섬이어서 늘 식량이 부족했던 탓에 제주의 농부들은 생빌레를 일구어 좋은 밭을 만드는 것이 소원이었다. 밭은 곧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기에 땅에 대한 애착은 어느 지역보다도 강했다. 밭에 빌레가 많을 경우 석공 들을 빌어서라도 돌을 깨어 밭의 모양을 징하고(바르게) 늬긔반듯(네모지게)만드는 것이 농부들의 목표였다. 1960년대에 석공의 일당은 보리쌀 한말(제주식 셈으로 넉되)이었다. 밭의 빌레를 깰 때는 경작하기 좋게 돌을 캐야하므로 사람의 힘에 맞도록 돌을 적당히 캐는 것을 일본말로 '오아리'라고 하고, 또 캐낸 돌을 더 잘게 부수는 것을 '고아리'라고 하는 데 정확한 의미는 차이가 있지만 두 용어 모두 나누고(割), 깨뜨리는(破)의미의 일본어 와루(割る, 破る)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생빌레를 캐기 위해서 석공들은 어떻게 할까. 도구로는 철괴(지렛대), 물뫼(큰메, hammer), 작은 메(망치), 정, 알귀(쒜기, 알기) 등을 준비한다. 먼저 생빌레에서 돌을 깰 위치를 정하고, 돌절(돌결)을 보고 깰 돌 크기를 가늠한 후 정으로 몇 개의 알귀 구멍을 판다. 알귀 구멍이 모두 파이면 알귀를 집어넣는데 이때 그 알귀 사이에 두터운 천이나 고무를 끼워 넣어 흔들거리지 않게 잘 물린다. 해머(hammer)질을 할 때 알귀가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돌을 벌를(깰) 때는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는 게 제일이주. 먼저 돌절을 알아야 허는디, 돌절에는 고는절(가로결)과 지르기절(세로결)이 있거든. 고는절로 알귀를 박아야 돌을 잘 벌를 수 이서. 그 다음 뫼질(해머)을 허는 디, 알맞게 힘을 넣엉 때려야지 무턱대고 뫼질을 하다보면 알귀가 튀어 사람이 다칠 때도 있주게(김용범, 1988)."
 
▲ 거북등 모양을 한 빌레(왼쪽)와 돌을 캐는 석공의 도구.
밭의 종류와 돌담의 재료 
 
밭의 종류를 알게 되면 밭담의 성격과 특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밭의 종류로는 조, 보리, 콩 등 일반 곡식을 심는 곡석(穀食)밭이 있고, 말과 소가 겨울을 나기 위해 키우는 찰(꼴)밭, 초가의 지붕을 단장하기 위한 새(띠)밭, 마소의 배설물을 모아 거름으로 쓰기 위한 바령팟(田), 마소가 있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키우기 위해 돌담을 두른 목초지나 산야를 불태워 조성한 거친 밭인 캐왓(田), 집안의에 작게 만든 우영팟(田)이 있다. 밭의 크기와 기능, 특성을 말해주는 이름으로는 벨진밭(큰밭), 닥르겡이(작은 밭), 살지픈 밭(흙살이 깊은 밭), 가분밧(흙 기운이 시원찮은 밭), 가슬왓(가을걷이 이후 봄까지 한 계절 노는 밭), 갈너른 밭(고랑이 넓은 밭), 작지왓·머흘왓(자갈이 많은 밭), 거리왓·가름팟(마을 안에 있는 밭), 난전·산전(마을에서 조금 먼 거리에 있는 밭), 뜬밭(푸석거리는 화산회토의 밭), 제월전(祭位田), 물왓(물이 고이는 밭), 테역밧(잔디밭) 등이 있다. 
 
돌담의 재료가 되는 돌의 유형을 살펴보면, 생빌레를 깬 돌, 경작시 솎아낸 돌, 자연적인 풍화로 인해 빌레에서 분리 돼 파쇄된 할석, 경작시마다 계속 일어나는 작지(자갈), 큰비가 와서 냇가로 굴러온 냇돌, 파도에 의해 해안의 암반에서 이탈한 할석, 석공의 주문에 의해서 다른 지역에서 캐온 돌, 조면암 산지의 돌, 아아용암 산지의 돌들이 그것이다. 
 
물론 돌담은 지역에 따라 모양도 다르지만 투물러스(Tumulus), 프렛셔릿지(Pressure Ridge), 빌레가 발달한 지역일수록 돌담이 발달해 있다. 왜냐하면 파호이호이 용암의 특성이 거북등 같은 절리층이 있어서 분리하기가 쉽고 다각(多角)의 모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돌담 쌓기가 수월하고, 돌끼리 서로 잘 물려져 센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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