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먹는 "정치작물"변질---각종정책 실종

위기에 빠진 감귤문제 해결의 걸림돌중의 하나가 ‘표 먹는’정치작물로의 변질이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시장논리에 따라야할 감귤에 대한 처방이 민선자치시대이후 ‘표’를 의식한 땜질식 응급조치가 반복되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행정에 의존하고 책임을 넘기는 그릇된 의식을 생산농가에 심어줬다는 얘기다.

감귤 ‘대란’을 치른 지난 97년 제주도는 농가소득 감소와 지역경제 위축등을 이유로 간벌·열매따기에 대대적으로 공무원을 동원했다. 또 120억원을 투입해 감귤을 수매·폐기하는 등 감귤문제에 깊숙히 발을 들여놓았다.

그 이후 간벌·열매따기·휴식년제 등 적정생산 대책 시행에 따른 공무원 동원은 연례행사가 됐다.

특히 올해는 ‘유사이래 최초로’ 3만톤 산지폐기, 가공용 수매자금 지원, 성출하기 상품가격 15㎏ 상자당 1만600원이하 추락시 긴급수매 등을 골자로한 정부차원의 감귤수급안정대책이 마련됐다.

시장논리로 따지자면 ‘당연히’출하되서는 안될 저급품 감귤을 폐기하는데 ‘돈을 준다’는게 맞지 않는다.

덜익은 감귤 후숙출하나 일정기준 이하의 저급품 감귤 출하자에 대한 제재규정을 담은 감귤생산·유통에 관한 조례는 언제부턴가 실종됐다. 단적으로 말하면‘표’ 때문에 실제 제재조치를 하지 못해 허명의 문서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정생산·고품질 출하를 ‘마르고 닳도록’ 외쳐도 먹혀들 수가 없다.

도는 고품질 감귤 생산 및 품질 다양화를 꾀하기 위해 2010년까지 4000ha를 폐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감귤산업발전계획을 만들었지만 ‘표’가 시장논리를 우선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추진될지 의문이다.

이러다 보니 상당수 감귤농가들은 가격이 떨어지면 자치단체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다.

도와 시·군 등 자치단체의 역할은 감귤산업에 대한 냉정한 진단과 생산농가와 전문가 등의 의견을 토대로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시행하는 한편 그에 필요한 지원을 하는데 그쳐야 한다.

이런 가운데 일부 농가들을 중심으로 제주감귤이 자생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시장경제논리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행정당국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본정책과 함께 그에 따른 자금 지원 대책만을 수립하고 농가들은 스스로 비상품 감귤 유통을 막고 소비자 입맛에 맞는 고품질 감귤을 생산해 나가자는 것이다.

강모씨(58·북제주군 애월읍)는 “현시점에서 필요한 건 행정기관의 땜질식 응급처방이 아닌 농가들의 의식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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