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태림 수필가·논설위원

나 역시 늙어 가면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 기억력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이다. 예전에 썼던 글들을 읽다가 '이게 내가 썼던 글들이 맞나?'하고 되물어보는 일이 다반사인가 하면, 반갑게 인사하는 가깝던 제자들의 이름이 얼른 기억나지 않아 미안스런 경우도 여러번이다. 그보다 더욱 심한 것은 금방 꼈던 돋보기안경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때도 어디 한두번이었던가. 이처럼 뇌가 노쇠하면서 근래의 일에 대한 기억력이 약해지는 반면에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었던 옛적의 일들은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나니, 그것 참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또래들이 모여 술자리를 가지면 서로의 근황을 물은 후 으레 소싯적 추억담이 화제가 되곤 한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엔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아니면 서로 맞서 으르렁 거리다가도 옛적 이야기로 화제가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색이 돌며 너도나도 거기에 몰입을 한다. 서로 신바람이 나서 나이도 잊고 주변도 아랑곳없이 떠들어 대는 걸 보면 과연 과거의 추억은 귀하고 아름다운가 보다. 모두가 다 왕년의 주인공들이다.
 
황혼이혼이 많다는 요즘, 그와 비례해 황혼재혼도 꽤나 늘어나는 모양이다. 어떤 방송사에서 이걸 주제로 방영하는데, 결혼상담소를 운영하며 상당히 많은 실적을 올렸노라고 월하빙인(月下氷人)을 자처하는 상담소장이, 서로 맞선을 볼 때 가장 경계해야 할 3계명 중 그 첫째가 '내가 왕년에…'였다. 맞선보는 자리에서 이 말을 자주 꺼내는 사람은 허세가 드세니 피하거나 아니면 조심하라는 것이다. 
 
낯선 남녀 노인네들이 처음 만나 나눌 말들이 무엇일까. 자식들로부터 효도 받는 자랑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부모로서의 실존가치를 상실한 허무함을 토로할건가.  백수로서 살아가는 궁벽한 삶을 호소하거나 아니면 반려자 없이 살아가는 외로움을 하소연할건가. 그동안 많이 모아놓은 재산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공론하거나 아니면 젊은이처럼 미래의 새로운 사업의 설계도를 내놓을 것인가. 삶이 다양하기에 많은 화제들이 등장하겠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선 남녀 누구에게나 환과고독(鰥寡孤獨)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더욱이 이 자리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환과(鰥寡)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마주한 것이 아닌가. 현재의 상황을 서로에게 진실하게 펼쳐내야 하겠지만, 어느 것인들 첫 자리에서 내놓을 소재로선 마뜩찮다. 그래서 어색한 자리에서 무난하게 화제를  전개할 수 있는 게 '내가 왕년에…'가 자연스레 나오는 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기가 맡은 일에 보람과 긍지를 느낄 때가 있다. 주변에서 보내는 시샘어린 선망의 눈길을 받으며 촉망되는 인물로 부러움을 사기도 했을 것이다. 이 맛이 없다면 어떻게 길고 힘든 삶을 살 수가 있었을까. 오르락내리락 꾸불꾸불 굴곡진 인생길에서 맛봤던 보람과 긍지야말로 좌절과 실의를 분발과 희망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했고, 불행과 나락으로 떨어짐을 막아주던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보람과 긍지를 느꼈던 일들은 강한 추억으로 자리를 잡고,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내가 왕년에…'를 통해 영화필름처럼 반복 재생되는 것이다.
 
황혼에 이른 인생, 나이가 들수록 옛날의 추억들은 애잔한 향수로 그리워진다. 다시 실현될 수 없는 지난일이기에 더욱 아쉽고 소중해지는 것이다. 길지 않은 여생이나마 노익장을 과시하며 미래와 희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의 추억 속으로 몰입하는 것은 그만큼 약해졌다는 것이다. '내가 왕년에…'는 지금 당장 어떤 일이든 젊었을 때처럼 자신있게 당당히 성취할 수 없음을 대신하는 풀이 죽은 고백성사이기에 허장성세가 아닌 나약함의 발로다.
 
'내가 왕년에…'로 서두를 꺼냈다가 퇴짜 맞은 할아버지의 푸념이 들리는 듯하다. "나는 늙어봤는데 너(상담소장)는 늙어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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