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익 수필가·논설위원

우리는 어디선가 누군가를 만난다. 가족이나 친지, 동창생만 응대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낯선 사람을 만나 새롭게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하기에 한스 카롯사는 인생을 만남이라 했다.
 
서로를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장, 그게 만남이다. 막힌 물꼬를 터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바람직스러운가. 관중과 포숙아,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은 한 시대를 아름답게 수놓았었다. 그처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한민족의 슬픔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으면 하나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옛 성인들끼리의 만남이 이뤄진 기록은 별로 없다. 성인으로 오른 분들 하면 예수와 석가, 공자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꼽기도 하지만 달리 내세우기도 한다. 이 분들은 시대며 지역이 달라 살아생전 만나지 못했다. 다만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공자와 노자의 만남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기원전 506년, 공자는 50세, 노자는 80세에 서로 해후한다. 사마천은 두 성인의 만남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사기」에서는 '주나라로 간 공자가 노자를 만나 예에 대해서 물었다'고 간략하게 적고 있다.「노자열전」에서는 공자가 "예란 무엇인지요?"라고 묻자 노자는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춰서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인다네. 그와 같이 군자란 덕을 지니면서도 외모는 바보처럼 보이지. 그대도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뭣도 없으면서 잘난 체하는 말, 헛된 집념을 버리란 말일세"라고 답했다. 그런 일갈에도 개의치 않고 공자가 "그게 예입니까?"하고 되묻자 "그건 나도 몰라. 다만 예를 묻는 그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란 이것뿐일세"라고 답했다.
 
두 분 문답은 화음이 맞지 않은 듀엣, 언뜻 노자의 승리로 단정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공자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집요하게 예에 대해 묻고 또 물어 '나도 몰라'란 말을 이끌어낸다. 이걸 보면 서로가 이긴 환상의 이중창이랄 수도 있다.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간다. 그는 제자들에게 "내가 만나 뵌 노자는 용과 같은 분이셨다. 무위의 도를 터득한 분인 것 같다"고 술회한다.  
 
그렇다. 노자의 사상은 '무위'가 주를 이룬다. 무위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극단적 게으름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무엇을 한다는 것은 하겠다는 인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저절로 그렇게 하게 됨을 뜻한다. 그것은 '자연'과 동일한 개념이랄 수 있다. 
 
그 만남 이후로 두 성인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에게는 제자들이 점점 많아져 세상 속으로 파고든 반면 노자는 더욱 무위의 도를 닦기 위해 속세를 떠나 산 속 깊숙이 들어간다.  
 
두 사상 간에는 차이점이 현저하다. 유가사상이 실리적이라면, 도가사상은 낭만적이다. 공자는 우리의 현실세계를 인의예지와 같은 덕으로 다스려나가려 애를 쓴 반면, 노자는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점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가치판단이나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 절대적 자유를 추구한 것이다.   
 
21세기로 들어선 지금은 어떤가. 춘추전국시대와 다를 바 없다. 지구촌 어느 한 곳 조용한 날이 없다. 세계경제는 앞으로 불어 닥칠 글로벌 경제 한파에 좌불안석이고 사회정의는 이분법에 휘둘려 갈피를 못 잡는 형국이다. 청소년의 인성이 기계문명과 사회적 가치판단에 짓눌려 바닥을 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해법을 올바르게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시점에서 두 성인을 떠올린다. 인간사를 포기할 수 없는 공자는 더욱 세상 속으로 파고들어 인의예지를 펼치려들 게고 노자는 이 난맥상을 그대로 놔둬야 자연 조절이 일어나 더욱 살기 좋은 새 세상이 열린다고 열을 올리지 않을까.
 
열화와 같은 갈채를 받으며 도백이 새로이 들어섰다. 열망을 안고 제주도민들은 '협치'를 앞세운 원 도백과 새로운 만남에서 세상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이 난마와 같이 얽히고설킨 오늘의 현안을 협치로 풀며 사회정의를 바로 일으켜 세워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난의 길을 걸어간 두 성인을 떠올리며 오늘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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