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논설위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구 반대편 작은 나라 한국을 찾았다. 교황은 무엇 때문에 자신의 휴가까지 반납하며 한국으로 날아왔을까.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행보로 세계사적 이슈를 만들어가는 교황이 어째서 골치아픈 나라, 힘주고 보아도 찾기 쉽지 않은 이 나라를 발견한 걸까.
 
역사는 아무렇게나 흘러가지 않는다. 역사의 방향성은 에너지에 의해 결정된다. 에너지가 굽이쳐 흘러가며 역사를 창조해낸다. 냉전이라는 20세기의 지구적 사건은 대부분 해소됐지만 여전히 그 질곡이 한반도에 집중돼 마지막 화해를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미국·일본·중국·러시아 같은 강대국 사이에 펼쳐지는 자본주의 경쟁, 흑막 뒤에서 벌어지는 힘의 대결이 이 사회를 뒤덮고 있다. 우리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세계사의 질곡이 이 작은 영토에서 거세게 파도치고 있다.
 
그는 이 땅에 발을 딛자마자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고 16일엔 꽃동네에서 장애아동들을 안아줬다. 17일 명동성당 미사에 위안부 할머니들, 밀양 송전탑·강정마을 거주민, 쌍용차 해고자 등을 초청해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의 이런 행보는 분명한 관점을 보여준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일관된 시선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30일 넘게 광화문에서 단식중인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의 눈빛은 성성해지고 있다. 그는 역사가 흘러가는 흐름에 올라타버린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 개인적 감정 그리고 사사로운 다툼 속에 살던 개인은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았다. 대신 그 자리에 결기에 찬 새로운 인물이 태어났다. 교황은 16일 광화문에서 시복식을 거행하러 가던 차를 멈추고 김영오씨의 두 손을 잡았다.
 
아직 세월호가 좀 큰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특별법을 제대로 만들라는 이 소란을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보면 전쟁도 좀 큰 다툼일 뿐이다. 개별적 교통사고는 사고 당사자들의 잘 잘못에 촛점이 모인다. 그러나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집계는 어떨까. 당연히 우리와 유사한 다른 나라의 자료를 비교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국가 교통관리 시스템의 얼개가 논의의 중심이 된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국가 재난관리 시스템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작동시키는 정부·국회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 일반 대중 등 국가 전체의 생얼을 노출시키게 됐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로 볼 때 이는 분명 기회다. 겉으로 덮어놓은 장막 뒤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국가가 발전하려면 바로 그 장막 뒤에 손을 대야 한다.
 
교황은 인류의 대표자로 이 땅에 파견됐다.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서 세계사의 당당한 일원으로 도약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답은 팀플레이다. 개인의 성공도 소속된 팀의 상호작용에 달렸고 공동체의 성공도 활발한 네트워킹에 있다. 국가의 성공도 세계적 포지셔닝을 통한 팀플레이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먹고사는 얘기만 나오면 논쟁을 그치고 쉽게 수긍해버린다. 그 논리로 독재도 견디고 비도덕적인 재벌도 키웠으며 수많은 아이들을 사지로 몰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당당히 세계사에 합류할 수 없다. 존경할 구석이 없는 졸부를 위한 자리는 애초에 없다. 
 
교황이 손잡고 안아주고 일으켜세우는 대상은 언제나 낮고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나라에 와서 딱히 특별한 퍼포먼스를 한 것은 아니다. 그 보편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이 보편의 가치를 세계사적 질곡의 파도가 넘실대는 이 작은 땅에서 우리의 방식으로 실현해내야 우리 모두 성공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는 이 땅에서 박해 받은 자들, 약자, 희생자, 그리고 이 모든 가능성의 상징인 어린이와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우리가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들이 일어서야 대한민국이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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