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원 한의사·제민일보 한의학자문위원

어릴 적 꿈이 만화방 주인이었다. 헌책들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들 속에 손님들이 시켜먹는 라면과 자장면 향이 조합된 그곳. 지금은 아이들이 자고 난 뒤 아내와 함께 보는 영화와 미국 드라마가 그 맛을 대신한다. 
 
칼럼 의뢰를 받고 영화 속에서 한의학과 연계지을 수 있는 소재는 없을까 생각해봤다. 몇 달 전 개봉했던 '하이힐'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느와르일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깨고 주인공의 다져진 몸매만큼 내면의 연기가 탁월했던 영화, 그리고 뜻밖에 성정체성을 전면에 다룬 영화이기도 했다.
 
주인공의 여장을 돋보이게 했던 그 하이힐. 다리를 길어보이게 하고 가슴과 엉덩이를 돋보이게 해서 S라인을 두드러지게 하는 일명 '킬힐'. 하지만 높은 굽으로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노력은 우아한 백조의 끊임없는 물장구와 다를 것이 없다. 이 상태로 장시간 서있으면 장딴지 안쪽 근육이 발달해 근육이 짧아지고 결국 근육이 수축하면서 무릎이 벌어지고 휜다리를 유발하며 무릎과 발목관절 인대에 무리가 되어 골관절염과 퇴행성관절염 등이 생긴다. 
 
또 척추전만을 불러 허리통증과 척추 질환도 피해갈 수 없다. 높은 앞굽으로 몸 전체가 지상에서 뜨게 되면 불안정감으로 발목이 꺾이기 쉽고 낙상의 위험까지 있다. 또한 이런 외형적인 체형의 변화는 외부적인 통증 외에도 오장육부의 기능까지 저하시킬 수 있다. 
침치료나 추나요법, 교정운동 등의 치료로 이러한 문제를 교정할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보다 앞선 예방이다. 
 
'좋은 구두를 신으면 그 구두가 좋은 곳에 데려다 준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여성분들, 예쁘게 꽃단장을 하고 또각또각 사랑하는 님을 만나러 가기 전 한번쯤은 하이힐의 문제점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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