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도정이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를 만들겠다고 도정운영 목표를 제시한지 2개월이 넘었지만 제주 문화재의 현장은 우울하다. 제주도정의 관리 소홀 및 무관심으로 적지 않은 문화재들이 훼손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서 원 도정이 문화의 가치를 운운할 자격 조차 있는지 의심스럽다. 문화재 훼손으로 오랜 세월 간직해온 제주공동체의 삶도 끊길 수 있기에 문화의 가치를 키우겠다는 큰 소리가 '허언'(虛言)으로 들릴 지경이다.
 
문화재 훼손은 정부가 지난달 공개했던 제주시 용담동 유적과 서귀포시 천지연 무태장어 서식지, 일제 동굴진지 등 일정한 형태를 유지한 유형 문화재에 그치지 않는다. 제주인들의 삶의 양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무형 문화재도 도정의 무관심 등으로 명맥 유지가 힘들다. 무형 문화재가 유형 문화재와 달리 일정한 형태는 없지만 제주인의 정신적 자산을 보유, 그 보존 가치가 높지만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다.
 
도정의 무관심으로 명맥 유지가 힘든 대표적 제주도 무형 문화재로 1986년 지정된 '정동벌립장'을 들 수 있다. 과거 제주 산간에 널린 '정동'(댕댕이덩굴)을 꼼꼼히 엮어 만든 모자가 '벙거지'처럼 생겼다 해서 정동벌립이라 불리고, 이를 만드는 공예기술이 제주도 무형 문화재 제8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현재 중산간 개발과 환경변화로 정동이 멸종 수준에 이르면서 명맥 유지도 쉽지 않다.
 
제주도정은 문화의 가치를 키워 더 큰 제주를 만들겠다는 말 보다 멸종 위기에 놓인 정동 재배기술 지원에 나서야 한다. 현재 80세를 넘은 정동벌립장 보유자와 전수조교 2명이 맥을 잇고 있지만 정동을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조교 2명이 직접 나선 정동 재배연구도 실패만 되풀이, 원 도정의 재배지원은 필수다. 재료 확보 등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지원하지 않은 채 문화의 가치를 키우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면 '보여주기'식 여론정치란 비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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