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심 결과 뒤집어…KB경영 공백 장기화 우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제재심의위원회의 결과를 뒤엎고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했다.  
 
금융지주회사 회장과 행장이 한꺼번에 중징계 통보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결정으로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사퇴압박이 커질 것으로 보여 KB내분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금감원장이 제재심 결과에 거부권을 처음으로 행사한데다 두 사람의 반발, 제재의 투명성 논란 등 후폭풍도 거셀 것으로 보인다.
 
최 원장은 4일 오후 브리핑을 열어 "국민은행 주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해 문책경고를 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임 회장에 대해 "국민은행 주전산기 전환사업과 그에 따른 리스크에 대해 수차례 보고를 받았는데도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 해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했고, 국민은행의 주전산기를 유닉스로 전환하는 사업을 강행하려는 의도로 자회사 임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설명했다.
 
이 행장에 대해서는 "작년 7월 이후 감독자의 위치에서 주 전산기 전환사업에 대해 11차례에 걸쳐 보고를 받았는데도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 해 위법과 부당행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함에 따라 사태 확대를 방치했고,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했다"고 중징계 사유를 밝혔다.
 
이에 앞서 최종구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위원장을 맡은 제재심은 지난달 21일 회의에서 이들에 대해 각각 경징계(주의적 경고)의 제재를 내렸고 최종 결정권자인 최 원장은 14일간 이를 수용할지 고심해 왔다.
 
현행법에 따라 이번 결정으로 이 행장에 대한 징계는 문책경고의 중징계로 최종 확정됐다. 임 회장의 징계는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이달말쯤 금융위원회에서 확정된다.  
 
금감원은 애초 주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이사회 보고 안건의 조작·왜곡 등 일련의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 이들에 대해 각각 중징계를 제재심에 상정한 바 있다.  
 
그러나 제재심은 위법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전산시스템 변경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점, 지주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롯된 점을 이유로 감경 결정했다. 
 
행장에 대해서는 이사회 결정의 문제를 제기하며 금감원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점 등을 고려해 경징계를 결정했다.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권고·직무정지·문책경고·주의적경고·주의 등 5단계로 나뉘며, 이 중 문책경고 이상은 중징계로 분류된다.
 
문책경고는 남은 임기를 채울 수는 있지만, 그 이후에는 3년간 금융권 임원 선임 자격이 제한된다.  
 
금융권은 이 때문에 문책경고를 사실상 '사퇴 압박'의 의미로 보고 이 수위의 제재를 받으면 대체로 사퇴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문책경고를 받고 사퇴를 거부하다 금융당국으로부터 퇴진압박을 받기도 했다.
 
최 원장의 이번 결정은 자신이 그동안 수차례 밝혀 왔던 "제재심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말을 스스로 번복한 꼴이 돼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들쭉날쭉하다고 비판받아온 금융제재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제재심의 제도를 도입한 취지가 퇴색된데다 금감원과 금융위 간부 3명이 위원으로 참석한 결정이 번복됐기 때문이다.
 
같은 사안에 대한 이중잣대 논란이, 제재 대상자의 법적 소송 제기 등 불씨도 남았다. 
 
또 두 사람이 중징계 조치에도 사퇴를 거부하고 법적 소송을 제기할 경우 최 원장이 내세운 '조기 KB경영 안정'의 의지는 퇴색하고 KB내분사태는 장기화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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