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밝히려는 언론인 역…"우리에게 필요한 영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신선함이 있다는 점이 '제보자' 매력이죠." 

 
다음달 2일 개봉하는 영화 '제보자'에 대한 주연 배우 박해일(37)의 평가다.
 
그 평가는 '제보자' 속 박해일 자신의 연기에도 충분히 빌려올 수 있을 것 같다.
 
박해일은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신선함'으로 대중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외롭지만 용기를 내어 힘차게 싸우는 언론인의 모습을 훌륭히 소화했다.
 
지난 19일 저녁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은 인터뷰용 사진 촬영을 마친 뒤 잠깐 양해를 구하더니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돌아왔다.  
 
이날의 마지막 인터뷰인 만큼 생맥주 한 잔을 청한 박해일은 "갈증 인터뷰네요"라고 운을 떼며 살짝 웃었다. 온종일 찾아오는 기자들을 만나느라 입에 단내가 났을 법하다.  
 
박해일은 지난달 제작발표회에서 데뷔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의 제안이니만큼 덥석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가 임 감독으로부터 "사람이 아닌 시나리오를 믿어야 한다"는 애정 어린 꾸중을 들은 바 있다.
 
목을 축인 박해일은 "나로서는 임순례 감독이 불러준 데 대한 반가움의 표현이었다"며 다시 웃었다.  
 
"시나리오를 받아 보고서야 무슨 이야기인 줄 알았죠."
 
'제보자'는 잘 알려진 것처럼 2005년 우리 사회를 뒤흔든 황우석 당시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성역이 된 황 교수의 의혹을 추적하면서 한때 전국민적인 비난에 시달린 한학수 당시 MBC 'PD수첩' PD가 박해일이 분한 윤민철 PD의 모델이다. 시나리오를 열어 본 박해일에게 부담과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제가 출연을 고민한 이유에는 그 사건을 다룬 영화라는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가 접하지 않았던 성격의 작품이다 보니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서 영화에 잘 녹아들 것인가 하는 부분이 제일 컸어요."
 
그러나 박해일은 평소 연기하면서 자연스레 접하는 언론인들을 보면서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어보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고 했다.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는 "정말 다들 아는 정도로 언론을 통해 접해본 기억이 전부"였다는 박해일은 다른 출연 배우, 스태프와 기본적인 생명공학 강의를 듣는 등 준비에 속도를 냈다.  
 
박해일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실제 모델인 한학수 PD와의 인연도 궁금해졌다.
 
"한 PD가 촬영 현장에 한 번 찾아왔기에 인사를 나누는 정도로 뵙고 계속 촬영에 임했다"는 박해일은 "(조언을 듣고)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 한 PD를 단순히 본뜨지 않으려고 노력한 모습이었다. 
 
"한학수 PD로부터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만큼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오히려 윤민철이라는 인물을 만드는 데 한계가 되는 지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래서 실존한 인물만 따라가기보다는 진실을 더 능동적으로 알아내려고 하는 언론인 느낌들을 따라갔어요. 특정한 모델만 따라가면 좁은 느낌이 들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임 감독이 구상한 윤민철은 "근성도 있으면서 귀여운 구석도 있으며 어찌 보면 그렇게 상반된 속성을 가진 만큼 유연한 인물"이라는 게 박해일의 설명이다.
 
박해일은 별다른 변신을 하지 않았음에도 제 옷을 입은 듯이 자연스러운 모습의 윤민철을 만들어 냈다. 관객들은 윤민철의 감정을 고스란히 따라가면서 영화에 몰입한다.  
 
다만 영화 중반부 제보자(유연석)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윤민철이 "내 경력, 내 모든 걸 걸고 여기까지 왔다"며 제보자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은 튀는 느낌이다. 
 
박해일은 이러한 지적에 "그 부분은 윤민철에게 직업적으로 어울리면서도 매력 있는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그 부분은 더 확실한 증거를 잡아낸 다음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윤민철의 심리전일 수도 있어요. 윤민철이 '나한테 지금 감추는 것 있죠?'라고 제보자에게 예의 있게 말했다면 제보자가 더 큰 진실을 털어놓았을까요? 그만큼 윤민철은 '초짜'가 아니고 매서움과 관록이 있다고 봐요."
 
'제보자'는 '추적자'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만큼 도입부부터 국민적 영웅인 이장환 박사(이경영)에 대한 윤민철의 진실 쫓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박해일이라는 배우의 힘도 있겠지만 윤민철이란 캐릭터에 훨씬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도 제보자는 중요한 상징성을 갖고 있어요. 맨 처음 제보에 의해 윤민철이 움직였고 결국 제보자가 없었다면 윤민철이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동력을 얻지 못했겠죠."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내공이 충실한 배우들이 주고받는 호흡이다.
 
박해일은 지난겨울 3개월간의 촬영 현장을 복기하면서 "모두 자기 색깔이 분명한 배우들이지만 서로 튀려고 하지 않고 상황에 맞추다 보니 굉장히 기분 좋게 균형이 맞춰진 채 흘러간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극중 맞수인 이경영에 대해서는 "촬영할 때는 본인 역할에 집중하지만 쉴 때는 정말 유연하고 상대에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분"이라고 평가했다.
 
하나하나 공을 들이지 않은 장면이 없겠지만 그는 윤민철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이장환 박사를 인터뷰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또 윤민철이 'PD추적'이 방송될 수 있도록 방송사 사장 앞에서 온몸을 던지는 장면도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로 꼽았다.  
 
"어떤 톤으로 해야 할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던 장면이에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그러다 상황에 맡긴 채 찍었는데 지금도 후회는 없어요. 누가 회사 윤리강령을 외우고 다니겠어요. 그러나 임 감독은 그 장면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고 봐요."
 
'제보자'로 그의 알찬 필모그래피에 의미 있는 작품 하나를 추가한 박해일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보면 또 한 작품을 했을 뿐이죠. 하지만 저한테 분명한 것은 이번 작품이 다음 작품을 하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점이에요. 작품을 읽어가는 지점들이나 캐릭터 구축, 배우와 스태프가 어우러지는 부분에 대한 노하우까지 아주 여러 가지죠."  
 
극중 인물들이 여러 차례 주고받고, 또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이 있다.
 
'진실과 국익 중 어느 것이 우선인가'라는 진부하지만, 쉽지 않은 질문이다.
 
같은 질문을 받고 잠깐 망설이던 박해일은 "영화 속 시사교양국장이 말하죠, 진실이 곧 국익이라고. 거기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요"라고 답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