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장·논설위원

어린 아들을 공원으로 데리고 나온 아버지가 아들을 땅에 내려놓고 걸음마 연습을 시켰다. 뒤뚱거리며 불안하게 걷는 아들이 넘어지기를 되풀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몇 걸음을 걸었다. 넘어지면 일어서서 걷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서 걷기를 여러 번, 아이는 대여섯 발을 떼어놓는 데 성공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설 때,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당신은 공연한 헛수고를 하고 있소. 아이는 오늘 여든일곱 번을 넘어졌단 말이오" 그 말을 들은 아버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저는 아이가 몇 번을 넘어졌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아들은 여섯 걸음을 혼자서 걸었답니다"(한희철 목사, 2005년 5월4일).
 
이 세상에 태어나는 아기들 치고 어느 누구도 걸음마가 어렵다고 포기하지는 않는다. 아기는 넘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걸으려고 발을 뗀다. 그렇게 아기는 자라고 커간다.
 
이 세상에 넘어지지 않고 걷는 법을 배운 사람이 어디 있으랴.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서서 걷는 법을 배웠기에 우리는 걸을 수 있었다. 
 
올해 2월 러시아 소치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쇼트트랙 500m 결승에서 1등으로 달리던 한국선수가 뒤에서 쫓아오는 선수의 견제에 부딪혀 넘어졌다. '아, 이젠 끝났구나!'하고 온 국민이 한숨을 쉬고 있을 때 그 선수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몇 발자국 못 가서 다시 넘어지자, 우리들의 한숨이 터지고 '아, 이번이야말로 정말 끝이로구나!'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그 선수는 또다시 일어서서 달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손뼉을 쳤다. 모두가 이젠 가망이 없다고 믿고 있을 때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서 다시 달리면서 우리 모두에게 감격을 안겨준 박승희 선수. 이름은 잊었더라도, 그때 그 감격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 국민이다. 겨우 12척의 배를 가지고 133척의 왜군 함대를 격파한 이순신 장군의 투혼이 아직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흐르고 있을 터. 이제는 다시 일어서야 할 때가 아닌가.
 
그 동안 우리는 너무 오래 넘어져 있었던 것 같다. 
 
정치인들이 흔들어놓은 혼란과 갈등이 도를 넘어서 너무 심했다. 국회는 150일 가까이 한 건의 법률도 심의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세비는 꼬박꼬박 챙겼다. 그들이 한 일이라면 동료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일, 그야말로 낯 두껍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극치이다. 정치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좋지 못한 일들이 잇따라 일어나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희망을 말했으면 좋겠다. 2차 대전을 치른 후 독일은 완전히 폐허로 바뀌었다. 어두침침한 지하실에 살고 있는 독일의 한 가정을 방문했던 미국의 한 사회학 교수가 조수에게 물었다. "저들이 나라를 재건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나는 저들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어째서입니까" 교수가 웃으며 되물었다. "그 어두운 지하실의 탁자 위에 무엇이 있었는지 자네는 기억하는가" "생화가 꽂힌 꽃병이 있었습니다" 교수가 대답했다. "바로 그걸세. 최악의 재난을 당한 상황에서도 탁자 위에 꽃 한 송이를 놓아둘 수 있는 민족이라면 반드시 나라를 재건할 수 있을 것이네.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이야기 속 '탁자 위의 생화'를 희망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서 우리 국민의 가슴마다 드리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우리 국민 모두, 넘어진 제자리에서 다시 힘차게 일어서자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서서 걷는 아기들처럼, 두 번씩 넘어져도 일어나 달렸던 박승희 선수처럼 우리, 일어서서 다시 걷고 힘차게 뛰어보자고. 이제는 일어서야 할 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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