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연 제주대학교 생활환경복지학부 교수·논설위원

   
 
     
 
요즘 친구, 가족, 직장, 동아리모임, 특정 모임, 정치 집단 등 모든 곳에서 소통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양한 개성과 인격이 존재하고,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집단이 다수 존재하는 현대사회에서 대화와 소통은 필수불가결한 덕목이다.    
 
인터넷에서 대화,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 등 관련 용어들을 찾아보면 정말 무수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상대방을 존중하고 공감해줘야 하며,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을 하는 것이 좋고, 긍정적인 태도로 임해야 한다는 등 대화와 소통을 잘하기 위한 방법을 상식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현실은 대화가 안되고 소통이 안 이뤄져 갈등이 심하다고 여기 저기 아우성이다.
 
대화와 소통의 부재가 그것을 하는 방법을 모르는,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갈등은 오히려 내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데에서 온다. 그런데 우리들은 정말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알고 있을까.
 
우리가 보통 '안다'는 것에는 과학적 사실(fact)이나 일어난 일(event)과 같은 분명한 지식체계, '아는 것'과 함께, 그러한 것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판단이 포함된 의식구조,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공존한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서 1100만 bit/s의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뇌는 40bit/s의 정보만 받아들여 28만분의 1의 정보가 손실된다. 그 정보 중 감각기억이 아닌 단기기억으로 저장할 수 있는 것은 5∼7개 정도이다. 인간은 수많은 경험과 학습을 거쳐 장기기억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유입되는 정보는 있는 그대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감정, 그에 따른 판단 등에 의해 소위 내 식대로 편집해서 저장된다. 그래서 인간의 지식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자신의 기준에 의해 저장된 의식구조라는 측면에서도 인간의 '앎'이란 알고 보면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의 대화는 지식체계가 아니라 주로 사고, 신념, 감정 등이 포함된 의식구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즉 아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하며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답이 하나뿐인 사실이 아니라, 정답이 존재할 수 없는 다양한 관점, 태도와 감정을 대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 그 결과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갖는다. 신념이란 개인의 성장과 성취를 가져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때로 상대방에 대한 공감, 포용과 타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수많은 관점과 신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이나 집단의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대화와 소통이 필수적이다. 이 때 나는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전제한다면, 어떤 세련된 미사여구의 대화법을 구사하더라도 소통이 이뤄질 수 없고, 결국 갈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결코 어리지 않은 어린 왕자의 말, 이 말을 우리 주변에, 우리 사회에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안다고 생각해왔으며, 사실 나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자각이 있을 때 변화는 시작된다. 나는 그 동안 무엇을 알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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