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논설위원

'드라마가 재미있으려면 갈등이 있어야 한다' 얼마 전까지 TV에서 어느 성공한 사업가 탤런트가 하던 말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바로 이 '재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붓끝에서 다양한 갈등 국면을 만들어낸다. 
 
갈등의 개념 자체는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갈등이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측면이 공존한다. 본디 부정적인 이 갈등을 잘 관리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조직이론이나 사회심리학에서는 이 영역을 아주 중요한 연구 아이템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 갈등은 왜 일어나는 걸까. 그것은 곧 주체가 되는 두 대상 간에 간극(間隙), 즉 서로가 맞물리지 않는 '틈새(gap)'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시스템에서 서로 다른 두 파트 간에 갭이 생기면 어딘지 모르게 비정상적인 잡음이 생기고, 시스템의 기능이 떨어져서 기대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상황은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는 걸까. 그것은 단답형 문제가 아니다. 대두된 문제를 놓고 원인, 과정, 방법과 도구에다 심리적 요인 등 여러 복잡한 변인들을 면밀히 분석해 냄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해답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복잡하게 생각하면 머리가 터질듯이 복잡한 게 이 갈등해결의 문제이다.
 
그러면 또 다른 무엇이 있단 말인가. 문제의 포인트를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설정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갖고 다니다 보면, 이따금씩 차들이 서로 뒤엉켜 도저히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운전자들은 서로가 삿대질을 해대며 야단법석이다. 내가 아니라 네가 문제라는 거다. 
 
이때 초점을 바로 내게 둬보자. 물론 그런다고 해결이 꼭 되는 것은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국면은 아주 달라질 것이다.   
 
자동차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운전할 때 주행 상황에 애로가 발생했다. 이럴 때 장애물이 비켜 주는가, 아니면 운전자가 비켜 가는가. 혹 앞의 장애 상황이 먼저 해소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운전자가 먼저 요리조리 제 길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이처럼 나 자신을 기준으로 설정해놓고 상대가 변해주기를 기대하고 요청한다. 그렇지만 저쪽 맞은편에 있는 상대도 나와 꼭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에 둘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원망과 미움만 커지는 것이다. 갈등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 나는 문득 깨닫는다 /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 그리고 누가 아는가 / 이 세상도 변화되었을지 "
 
영국 여왕의 대관식이 거행되기도 하는 국가교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Collegiate Church of Saint Peter)의 지하에는, 여왕을 비롯한 예술가 등 명사들의 무덤이 있는데, 거기 어느 주교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글귀이다. 
 
예전에 필자도 두 번이나 들렀었던 곳인데, 이런 감동적인 명문이 기념되고 있음을 나중에야 알고는 더욱 새로운 감회를 느끼게 됐다. 
 
그렇다. 내가 변하지 않고서야, 도대체 누구를 변화시키며,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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