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범석 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다산의 대선배인 유의는 문과에 합격하여 좋은 벼슬도 지내고 형조참판을 역임하고 대사간, 대사헌에 홍주목사를 지낸 대단한 목민관이었다. 다산은 34세 때 주문모신부의 밀입국 사건에 무고로 비판받아 승지의 벼슬에서 홍주목(洪州牧) 안에 있던 금정도(金井道)찰방(察訪)이라는 하위직으로 좌천되어 유배생활과 같은 생활을 했다. 그때 상관으로 모셨던 유의였기 때문에 그가 그의 치적을 직접 목격했다.


"참판 유의가 홍주 목사로 있을 때, 나는 금정역 찰방으로 있었다. 편지를 보내 공사(公事)를 의논하고자 했으나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 홍주에 가서 그를 만나 '왜 답장을 주지 않았소'라고 물었더니, '나는 수령으로 있는 동안은 본래 편지를 뜯어보지 아니하오'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편지 상자를 열게 하니 상자 속의 편지가 하나도 뜯기지 않은 것인데, 모두 조정의 귀인들이 보낸 편지였다. 내가 '그런 편지야 그렇겠지만 내 편지는 공사(公事)였는데 왜 뜯어보지 않으셨나요'라고 묻자, 그가 '만약 공사에 속하는 편지였다면 왜 공문으로 보내지 않았소'라고 답했다. '마침 비밀스런 이야기였소! '라고 하니, '그렇다면 왜 비밀스러운 공문으로 보내지 않았소'라고 했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가 사사로운 청탁을 끊어버리는 것이 이와 같았다."('목민심서' 병객(屛客)조). 강직하고 청렴했던 다산은 선배이던 참판 유의를 정말로 존경하여 '목민심서'의 여러 곳에서 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민속자연사박물관의 전 공직자들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모범으로 해서 청렴한 공직생활, 고객들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긍정의 마인드를 제공하는 등 제주도가 청렴도 전국 1위 달성에 앞장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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