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전 애월문학회 회장·시인·논설위원

   
 
     
 
'틈새'라 하면 벌어져서 생긴 좁은 사이나 간극을 뜻한다. 그러니 '틈새가 생겼다'하면 어떤 일이나 관계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작은 틈새로 거대한 강둑이 무너지고 물이 범람해 농지와 집, 사람들을 휩쓸어버린다. 우리는 작은 틈새가 원인이 돼 일어났던 대형 참사를 줄줄이 기억하고 있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의 붕괴가 그렇고 세월호 참사도 일상화된 부주의나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됐다 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숱한 크고 작은 사건의 개요나 결과를 낱낱이 기록하고 보여주는 좋은 교범이다. 그럼에도 지구상에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수많은 일들, 좋은 일보다 나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인간에게서 욕망을 제거할 수 없다면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서 완벽이란 한계 상황일 수 있지만 고도의 교육을 통해 욕망에 따른 좌절과 절망, 증오의 감정을 조절하고, 보다 엄격하고 치밀한 제도의 운영에 기댈 수밖에 없다. 틈새란 늘 있어왔지만 사전에 점검하고 제 때에 조치를 취한다면 미리 예방하거나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에디슨의 전기를 발명하기까지 6000번의 실패가 그가 발명의 천재가 되는데 노하우가 되었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의 안전불감증을 치유하는 극약처방이 돼 안전제일의 대한민국이 됐으면 한다.

'틈새'의 또 다른 뜻으로는 바쁜 중에 잠깐 시간을 내는 겨를이나 여유를 말한다. 인간이란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하필이면 사이 간(間)자를 붙였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사람이 사는 일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 곧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나비효과'란 말이 있다. 아마존의 밀림지대에서 나비의 팔락임이 미국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미국의 기상학자의 이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인간의 관계에서 '틈새'란 잠깐 짬을 내는 일이겠으나 나비효과처럼 '작은 여유'라는 의미 이상이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날이 갈수록 삶이 버겁고 지치고 숨 쉴 여유도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럴수록 억지로라도 틈새를 내는 일이야말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 각박한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나의 작은 배려가 다른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끔 접하게 된다. 한 달에 3만 원이란 돈은 한국의 보통사람들에겐 작은 것이지만 가난한 나라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겐 한 달을 사는 양식이 되며 교육을 받을 수 있어 미래의 희망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에겐 서로 오갈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 그게 틈새다. 틈이 없는 사람, 완벽주의자나 결벽증의 사람은 늘 외롭다. 다른 사람이 다가갈 틈새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손을 자주 씻는 것은 좋은 습관이지만 수십 번 손을 씻는 사람은 자기가 손수 한 것 외에는 믿지를 못하니 외로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제주도는 강수량이 많고 태풍이 많지만, 그럼에도 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미미한 것은 순전히 한라산의 화산토양덕분이라 한다. 구멍 숭숭한 토양은 빗물의 대부분을 흡수하고 풍부한 용천수를 품어서 식수를 해결해주고 있으니 너무 고맙다.

필자는 고내봉 중턱 붉은 흙 틈에서 눈물처럼 찔끔거리는 물줄기를 보았다. 그리고 저 밑에서 졸졸 소리를 내면서 흐르는 것이 아닌가. 아하, 눈물처럼 서로 손을 잡고 도랑이 되고 시내가 되어 바다로 가는구나, 순간 스치는 영감으로 '길-눈물'이라는 한 편의 시를 얻었다. '캄캄한 틈새로/ 길은 내었네.// 그리움/ 그 먼 길// 네게로 가고 있다.'

눈물구멍이라는 좁은 틈새로 길을 내고, 그길 따라 나의 전체로 액화된 한 줄기가 그리움의 먼 길을 네게로 가는 것이다. 이 땅에는 나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해줄 너의 틈새가 필요하고, 나의 틈새로 들어오고 싶은 사람, 나의 작은 배려와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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