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 봉성교회 목사·논설위원

   
 
     
 
어릴 때 매우 허약한 아이라는 소릴 들으며 자라났다. 내 나이와는 차이가 있는 급우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야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체구도 작은 데다가 체육점수는 최하위가 내 자리였다. 스스로도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서는 물론 잘 알지 못하는 어른들도 약한 아이라 여겼다. 자연스레 늘 조심스럽게 살아야 했다. 덕분에 다치거나 아파서 병원에 누워본 일이 아직껏 없다. 나이가 들어서야 내가 꽤 강한 체질로 태어났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하여간 스포츠 분야에서 난 늘 관중석에서 구경하는 입장이었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동안 3년간 전국체육대회의 핸드볼 경기를 맘껏 볼 수 있었던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학교 운동장이 넓은 덕에 체전 때마다 핸드볼 경기장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중간에 잠깐 보려던 것이 수업에 늦어져 꾸중을 들었던 일도 생겼는데, 이제는 고운 추억이 되었다. 성장기에 서귀포지역에서 인근 학교들은 핸드볼 전국대회에서 입상할 정도의 실력이 있었다. 그래서 게임이 낯선 것은 아니었으나, 전국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의 경기는 환상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경기를 분리하여 소년전국체전이 탄생하기 직전이었으니, 남녀부 모든 수준의 경기를 골고루 볼 수 있었다. 당시 여자일반부는 초당약품과 백화양조 두 실업팀과 인천시청, 대전시청 네 팀이 있었다. 그 선수들의 실력이 발전하여 후일에 세계정상을 밟게 되었으니, 그 당시에도 꽤 수준이 높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팀이 기묘하게도 초등부 여자선수들과 시합을 한 경우도 생겨났다. 당시 각 지역 시·도 간의 경쟁은 메달보다 종합점수 올리기였다. 일반부 참가만으로도 기본점수가 배당되는 것을 안 임원이, 초등부 선수들을 일반부로 출전시켰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이를 낮춰 출전한 것은 아니었으니 부정선수나 부정팀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는지, 경기는 진행되었다. 양팀 선수나 관중 모두에게 민망한 시합이 되고 말았다. 어른들의 비정한 점수경쟁에 추한 꼴이 연출되었다. 그 점수가 얼마나 보탬이 되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다른 여자초등부 경기에서 벌어진 시합도 기억에 남아 있다. 전반전을 마친 뒤 뒤지던 팀에서 상대방의 우수한 선수 한명을 전담 밀착수비하도록 작전을 지시한 모양이다. 그 수비수는 멍때리기 대회에 출전해도 될만큼 우직하게 보였다.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작전을 충실하게 따랐고, 상대 골게터를 완전 봉쇄하였다. 공이 오더라도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상대 선수의 행동반경을 제한하였다. 당혹스러운 사태에, 해결할 있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선수들은 역전이 되자 거의 울음을 터뜨릴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봉쇄작전을 지시한 것을 어른들의 슬기로움이라 할 수 있을까. 성인팀에서나 가능한 변칙플레이를 도입하여, 아이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을 듯하다.  

현재의 선수들은 그러한 문제를도 다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그라운드에 나설 것이다. 세계 최고의 경기를 날마다 실시간으로 즐기며 관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제주에서 세 번째로 체전을 유치하여 진행하는 것은 우리 제주도민들에게 좋은 기회가 된다.

영상기술이 나날이 발전하여 운동장 안에 들어선 선수를 정교하게 보여주고는 있지만,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사뭇 다르다. 

좋아하는 종목이나 팀, 선수가 있다면 해당 경기장을 찾기에 더할 나위없이 알맞은 기회가 된다.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체육잔치에 큰 정보나 사전 준비없이 참관하더라도 유쾌한 경험은 보장될 것이다. 이 주말의 여가시간에 온 가족이 나들이하며 여기에 투자하는 게 어떨까. 장년의 세대에게는, 잊고 있거나 소홀히 하던 젊음과 건강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될 것이다. 자녀들이 이런 때에 품게 될 꿈이, 좋은 결과를 낳는 출발점이 되리라 기대하면서.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