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제주관광대학교 사회복지과 겸임교수·논설위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범국민운동기구'를 만들어 복지수준의 결정과 증세의 국민적 합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도 복지 재원 논의를 위한 '국민대타협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시각차는 있지만 복지가 놓여있는 상황을 위기로 진단하고 재원 마련을 위한 국민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일치한다. '복지 디폴트'조짐이 곳곳에 나타나면서 급기야 정치 거목들이 나선 것이다.

지난10월 전국 시ㆍ도 교육감협의회는 누리과정의 예산편성을 할 수 없다며 사실상 무상보육 디폴트를 선언했다. 이에 교육부는 무상급식을 재고해서라도 시ㆍ도교육청이 예산편성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모자라면 지방교육채를 발행하라며 핑퐁게임을 벌이고 있다. 교육감들은 태어나 처음 받는 아이들의 교육을 할 수 없다 하고, 교육부는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라고 압박하고 있다. 빚잔치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앞서 9월에는 기초연금으로 인한 예산부담 때문에 지자체장들이 이미 디폴트를 선언한 상태다. 특정 지자체만의 반발이 아니라 전국 226개 지자체의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함께 한 선언이다. 정부가 떠넘긴 무상복지가 원흉으로 지목되고 그로 인한 복지비용 부담이 지자체를 파산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중앙정부의 곳간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재정적자가 30조원을 넘을 것이라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12년 9.3%, 2013년 27.0%, 올해는 31.2%로 해마다 늘고 있다.

지자체들은 돈이 모자라 아우성이고 나랏빚은 날로 쌓여간다. 복지를 확대하지 않고 유지만 한다 해도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11.2%씩 지출이 늘어날 것이란 예측이다. 여기에 무상복지에 예산이 쏠리면서 방치되었던 취약계층복지 불균등을 바로잡아야 한다.

양극화 심화에 따른 복지수요 또한 급증하는 상황이다. 복지비용은 예상치 보다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재원대책을 가볍게 보고 날린 복지가 위기를 안고 부메랑처럼 돌아온 것이다.

복지는 재정 없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복지 확대와 증세는 불가분의 관계다. 정치인이 복지공약을 내걸 땐 재원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유권자가 복지 확대를 요구할 땐 스스로 세금을 더 내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질 못했다.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은 마치 자신의 주머니에서 선심 쓰듯 공짜복지를 외쳤고, 국민들은 복지는 좋지만 내주머니는 건드리지 말라는 이중성을 보여 왔다.

정부는 또 어떤가. 증세를 증세라고 부르지 조차 못한다. '증세 없는 복지'에 매몰되어 사실상 세금을 올리면서도 증세가 아니라고 우기니 납세자들은 약이 올라 반발한다. 신뢰는 무너진다.

복지를 축소할 것인지, 확대할 것인지 복지수준을 논의하고 그에 따른 증세를 '범국민운동기구'에서 합의하자는 김무성 대표, '국민 대타협위원회'에서 지속가능한 복지증세를 논의하자는 문희상 위원장의 목소리는 국민들에게 위기를 알리는 경보음이다. '특단의 조처'가 불가피하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 다시 복지논의의 장이 펼쳐지려하고 있다. 복지 1라운드가 누구에게 어떤 복지를 얼마나 제공할 것이냐를 선택하는 단계였다면 복지 2라운드는 복지에 소요되는 돈을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마련할 것인지가 논의의 중심에 설 것 같다.

어렵게 다시 시작되는 복지논의와 합의의 장은 모두가 반성적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사회에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복지의 뿌리를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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