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미술평론가·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

   
 
     
 
빌바오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지방에 있는 도시다. 바스크지방이라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동부의 카탈로니아지방과 같이 심심치 않게 뉴스를 타는 곳이다. 이 지역은 스페인내란 때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 나치 공군에 의해 전 도시가 비참하게 피폭된 게르니카로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파리에서 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가 나치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작품 '게르니카'를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피카소는 독재자 프랑코가 살아있는 동안 고국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뉴욕 현대미술관에 임시로 맡겨진 게르니카는 조국이 민주화되는 날 스페인으로 돌려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지금은 스페인으로 돌아와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증언해주고 있다.

빌바오는 이 같은 어두운 역사를 지닌 곳이다. 빌바오는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한때는 철강과 조선업의 중심지역이었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한국 등에 조선, 철강산업의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급속한 퇴락의 길을 걸었다. 산업 쓰레기들은 쌓이고 도시를 가로 지르는 네르비온강은 오염될 대로 오염돼 악취가 온 도시를 덮었다. 도시는 죽어가고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죽어가던 도시가 도시재생 프로그램에 의해 기적같이 되살아났다. 옛 산업의 부활이 아니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이 들어서면서 매년 백만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도시가 활기를 되찾게 된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미술관 하나가 들어서면서 도시는 밝아졌고 악취를 풍기던 강물도 더없이 맑아졌다. 물론 이를 위한 엄청난 투자가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쓰레기더미 위에 장미가 핀다는 말은 기적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구겐하임 빌바오는 건물의 외양이 피어나는 장미를 연상케 한다. 비행기에 사용되는 소재를 외장재로 한 건축물은 마치 상공에서 막 지상에 내린 비행물체처럼 현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더욱이 상공에서 보면 영락없이 갓 피어나려는 한 송이 장미로 보인다고 한다. 건축가 프랭크 갤리가 의도한 것이다.

빌바오가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과감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이를 실현하려는 주 정부와 도시민의 열정, 거기에다 건축가의 창조적 집념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가 빠져도 기적은 이루어질 수 없다. 20세기 후반부터 이루어진 건축물 가운데는 이 같은 기적에 해당하는 것이 적지 않다. 사창가로 악명 높던 지역을 과감하게 재개발하면서 들어선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건축가 피아노는 지역의 분위기를 일신했을 뿐 아니라 혁명적인 건축양식으로 새로운 건축문화의 지표를 만들어냈다.

20세기 후반부터 세워진 미술관을 비롯한 문화공간이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지역이 되살아난 예는 적지 않다. 최근 한국사람들도 많이 찾아가는 일본 나오시마도 그 좋은 예이다. 본토와 시코쿠 사이의 세토 내해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작은 섬이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될 줄을 누가 알았던가. 후쿠다케 출판사 사장이 사원들을 위한 캠프장을 만들려고 쓰레기로 쌓인 버려진 땅을 사들임으로써 시작된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꿈을 지닌 출판사 사장과 이 지역 이장이 의기투합해서 이루어낸 것으로, 행복한 삶을 실현한다는 새로운 문화의 담론을 구체화한 것이다. 꿈이 있고 그 꿈을 실현하려는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투자와 풍부한 창조의 에너지가 결합됨으로써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자, 이제는 이를 제주에서 이루어보려는 꿈을 꿀 차례다. 천혜의 섬 제주는 버려진 땅도 아니다. 건강한 자연의 조건을 지닌 곳이다. 이러한 조건이면 더 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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