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커스] '고령사회 제주' 노인복지의 그늘
르포 1 / 겨울 문턱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

▲ 찬바람에 비까지 내린 30일 오후 제주시청 인근의 골목길에서 한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연결한 자전거를 끌며 폐지를 줍고 있다. 김대생 기자
추위에도 클린하우스·식당 돌며 폐지·캔 등 수거
하루 4시간씩 매일 나와도 생계유지 턱없이 부족
 
고령사회로 들어선 제주노인들의 겨울이 버겁다. 없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더 가혹한 계절일까. 겨울 문턱에 접어든 제주시내의 골목길에서 리어카와 유모차에 폐지 등을 실은 노인들의 발걸음에서는 여유로운 '여생'을 찾아볼 수 없다.
 
비날씨속에 찬바람까지 스며든 지난달 30일 제주시내 주택가 골목길의 클린하우스에서는 노인복지의 그늘이 깊게 배어 있다. 반찬값과 난방비 등 생계유지를 위해 '팔 수 있는' 쓰레기를 줍느라 무릎과 허리를 계속해서 굽히는 몸놀림은 고단한 황혼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오전 7시 일도2동 주택가의 클린하우스에선 고순덕 할머니(79·가명)가 가슴팍 높이의 수거함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폐지를 들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하루 4시간씩 매일 폐지를 모아 판 한달 수입은 3만원. 시간당 250원도 안 되는 금액이다. 노령연금을 받고 있지만 당뇨에 혈압, 심장병까지 앓다보니 병원비와 약값으로 지출하면 남는 게 없다. 먹고 살기 위해 다시 폐지를 꺼내는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는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황혼의 무게였다.
 
오후 2시 제주시청 부근의 골목길에서 만난 김영식 할아버지(78·가명)는 리어카를 연결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리어카에는 주변 클린하우스에서 모은 폐지와 빈 캔·병 등이 담겨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나온 탓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할아버지는 리어카 양 옆에 매달아놓은 포대에 캔과 병을 가득 채우려면 몇 시간은 더 돌아야 한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이날 오후 늦은 시간 제주동초등학교 부근의 한 식당 앞에서는 조복순 할머니(73·가명)가 빈 음료수 캔을 발로 찌그러트리고 있었다. 찬바람이 골목길에 가득 찼지만 무릎을 손으로 움켜쥐며 캔을 연이어 밟는 할머니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갈퀴처럼 앙상해진 손으로 캔을 유모차에 주워 담은 할머니는 "요새는 폐지나 빈 캔 등을 줍는 것도 경쟁이 치열해 허탕 치기 일쑤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아프고 가난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는데…"라며 푸념했다. 실직한 아들과 저녁식사를 위해 집으로 향하는 할머니의 유모차엔 빈곤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정부·제주도가 복지예산을 몇 % 더 올렸다면서 자랑하지만 노인들의 가슴은 생계 걱정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고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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