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위원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직원 선희는 오로지 정규직이 되겠다는 희망 아래 마트측의 부당한 처우도 고스란히 감수한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일했음에도 정규직이 되기는 커녕 하루아침에 용역업체 파견직으로 전환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결국 선희는 다른 비정규직 직원들과 함께 마트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나가게 된다.

제주출신 부지영 감독의 '카트'는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화는 실제 지난 2007년 이랜드그룹이 운영하던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일어난 비정규직 해고 사태를 다뤘다. 당시 이랜드그룹은 2년 이상 근무한 상시고용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되기 전에 비정규직 700여명을 부당하게 해고했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증가를 막기 위한다는 취지였지만 사실상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만 낳은 것이다. 계약기간을 채우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해고통보를 받은 직원들은 이에 반발해 500일 넘게 파업에 나섰다.

'카트'가 상업영화로는 드물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사회적 공감을 얻는데는 단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현실 속 내 이웃,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제주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최근 '노동력 불완전활용'(under-utilization)지표를 이용한 제주지역 실업률 추정 분석 결과 도내 비정규직 비중은 41.7%로 전국 평균 33.3%를 크게 웃돌았다. 임금 근로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호남지방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도내 고용률은 67.4%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고용의 '외화내빈'이다. 제주도정은 밀려드는 관광객과 각종 관광개발사업에 따른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같은 전문기관의 분석을 보면 글쎄다.

특히 제주에 투자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고용 불안정성만 더욱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비정규직은 말그대로 계약에 의한 일자리다. 기간이 끝나면 원하지 않아도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여차하면 계약기간 전이라도 일방적으로 해고될 수 있는 '파리목숨'에 다름 아니다. 고용이 불안한데다 처우 또한 열악하다. 사측에서 비용부담 등을 이유로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을 꺼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도내 임시·일용근로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20%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이 비정규직 중심으로 고착화되다보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미래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빈곤의 악순환과 양극화를 심화시키게 된다. 비정규직 문제를 손놓고 있어서만은 안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제주도정과 도의회, 토종 및 투자기업, 우수인력 양성기관인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도민과 함께 권한을 나누겠다'는 '협치'의 원희룡 도정과 '도민을 하늘처럼 떠받들겠다'는 제10대 도의회가 앞장서야 한다.

저임금·고용 불안 등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카지노·공항·크루즈산업 및 대규모 투자유치 유도 등으로 2019년까지 지역내총생산(GRDP) 2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원 도정의 정책도 자칫 비정규직 양산의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외적으로만 화려한 숫자 늘리기에 집착하기보다 내실이 중요하다.

옛 말에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란 말이 있다. 사람은 먹고사는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내몰리게 되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위정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만고불변의 원칙이다. 제주도정의 새로운 운영 원리로 등장한 협치가 도민들과 진정으로 권한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도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 '민생협치'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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