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6학급 규모의 학교에 근무하고 난 후 두 번째로 근무해보는 작은 학교. 아침 출근길에 제주종합경기장을 지나 오라초등학교로 가는 골목길에 들어서면 저만치 아이들이 가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 걸어가면서 친구랑 장난치는 아이들. 그래도 뒤 따라 오는 사람이 선생님인줄 알고 야! 선생님이다 하는 반가운 외침에 짐짓 쫓아가는 체 하면 와! 하며 책가방을 진 채 열심히 도망치는 뒷모습들이 정겹기만 하다. 도심 속의 전원 같은 학교이기에 아이들의 행동이 더욱 순진하고 맑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봄엔 귤꽃의 싱싱한 향기가 퇴근하는 발길을 가볍게 했고, 여름엔 길가 양옆에 하얗게 핀 찔레꽃이며 어릴 때 들로 산으로 따러 다녔던 산딸기가 내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아니, 도심 속 이렇게 가까운 곳에 옛 모습들이 숨어 있었나?"하는 놀라움과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내 일상을 되돌아보게 했다.

작년, 규모가 제법 큰 학교의 1학년 담임을 하고 일년을 마칠 무렵 선생님과 생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거 얘기해 볼래? 하는 질문에 나는 내심 우리를 열심히 가르쳐 주신 것이 가장 고마웠습니다 라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하는 건 선생님, 쉬는 시간을 주신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리고 운동장에서 선생님하고 우리하고 땀흘리며 피구 경기했던 것이 가장 생각이 납니다. 라는 대답이었다.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그렇다. 지식을 한가지라도 더 주려는 노력보다 오히려 포근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함께 뒹굴 때 아이들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닿을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리라.

올해 이 학교로 전근되었을 때 학교 구석구석에 어렸을 적 보았던 꽃들이 많아서 신기하기만 했었다. 달리아와 붉은 칸나, 그리고 꼬꼬댁 꽃 이라고 하면서 꽃잎을 따다 코에 붙이고는 닭 울음 울며 장난치던 접시꽃들은 요즘 학교화단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 시절의 학교 교정 구석구석에는 꽃으로 가득 했었다. 화단 가득 넘실거렸던 별꽃들, 화려함으로 눈을 잡아끌었던 금잔화는 가장 흔하면서도 정다운 꽃이었다. 키 작은 채송화와 무더기로 피었던 백일초도 흔한 꽃이었는데…… 꽃이 많았기에 벌과 나비가 많았고 자연스레 동물들의 관찰이 이루어 졌었는데…….

다행히 오라초등학교 교정에서 그나마 지난 추억을 되씹을 수 있었던 것은 철따라 피어나는 꽃밭과 푸른 잔디동산, 교실복도의 갖가지 새 울음소리, 수목마다 어린이들의 나무에게 주는 편지글이 매달려 있어서다. 특히 학교 특색교육인 환경체험활동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름을 오를 때 오히려 나를 인도하려는 아이들의 숙달된 몸짓과 마음씨가 자연을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되어 진다.

우리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추억거리가 많으리라 본다. 이렇게 좋은 자연환경 속에 나 또한 자연을 닮은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서리라 다짐해본다.

작은 학교, 그린벨트로 그동안 묶여있던 전원학교가 이제는 그린벨트가 풀려서 집들이 분주히 들어서고 있다. 어쩌면 곧 도시학교화 되어 버릴 것 같아 아쉬워 진다. 아이들의 마음의 꽃밭은 그대로이어야 할 터인데….<임영신·오라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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