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 교장·논설위원

   
 
     
 
거둬진 답안지와 시험지를 확인하고 있는데, 두 아이가 교실 앞으로 나오더니 주섬주섬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답안지와 시험지를 챙겨 교실을 나오려는데 등 뒤로 그의 짧은 한 마디가 들렸다. "3년을 바쳤는데, 1교시 국어에서 이럴 줄은…." (…) 한 감독관은, 수능 중도 포기 수험생이 전국에 족히 수천은 될 거라고 말했다(오마이뉴스, 2014.11.19.). 서울의 한 대학에 '수시'로 지원한 딸을 둔 어머니는 예상성적이 안 좋다며 열흘째 날마다 울고 있는 딸을 보며 어떻게도 해줄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고 푸념을 쏟아냈다. "함께 울어줄 수도 없고, 어떻게 달래면 좋을지 정말 가슴 아픕니다"(msn뉴스, 2014.11.23.).

우리나라 수능은 문제가 많다. 정부는 근본적인 개선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 못한 수험생들도 크게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실망하지 않고 다시 도전함으로써 당당한 자신의 인생을 펼친 사람들도 많다.

'아, 떨어졌구나!' 힘없이 걸어 나오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보았다. "저기, 혹시 알베르트 학생 아닌가요?" 학교의 직원인 듯했다. "예, 맞습니다만…." "마침 잘 만났군. 학장님이 부르시니 어서 가보게." 알베르트는 영문을 모른 채 그를 따라 들어갔다. "자네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가? 수학담당교수가 자네 시험답안지를 보고 몹시 놀랐다더군. 그래서 말인데, 다른 과목 성적을 보면 합격을 시킬 수 없겠지만, 수학성적이 너무 아깝네. 어떤가, 1년 동안 김나지움에서 더 공부하고 오면 내년에는 자네를 무시험으로 받아주고 싶은데…." "정말입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첫 대학입시에서 불합격을 하고 두 번째 입시에서도 전체 성적은 나빴으나, 수학성적이 뛰어났기에 대학에서 조건부로 입학을 허가해 준 것이었다. 상대성원리 등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된 그의 학문적 연구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처칠의 경우만 해도 여러 번의 고배를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던 처칠은 다른 명문가의 청년들처럼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과 같은 일류대학엘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지만 그것도 두 번이나 떨어졌다. 아버지로부터 "전혀 쓸모없는 놈"이라는 심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처칠은 다시 3수를 준비하고 도전하여 드디어 합격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리더십의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내가 바라는 대로만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세상의 아름다운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면서 피어나듯이,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역경을 겪고 이겨내면서 자신의 꿈을 일궈내는 게 아닌가. 한때는 지능지수라는 말에 이어 감성지수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더니 요즘엔 '역경지수', 또는 '역경극복지수(AQ: Adversity Quotient)'란 말이 강조되고 있다. 역경을 많이 극복할수록 삶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1990년대 미국의 폴 스톨츠 박사가 발표한 이론이지만, 이런 생각은 진즉부터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 "꺾이지만 않으면 강해진다"고 했던 니체나,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입니다"라고 했던 지그 지글러의 말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청운의 꿈을 간직한 젊은이들로서 수능 '실패'는 어쩌면 극복하기 힘든 좌절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육군사관학교 입시에 세 번째로 겨우 턱걸이해 들어갔지만, 한 번도 절망하지 않았던 처칠이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장에서 했던 축하의 말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다.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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