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성 논설실장 겸 서귀포지사장

 

   
 
     
 

우리나라에서는 현 18대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11명의 전·현직 가운데 3명이 '장로 대통령'이다. 그런 만큼 개신교에 대한 장로 대통령의 사랑은 각별했으며 개신교의 위세는 아직도 대단하다.

개신교 장로였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 5월 31일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을 기도회로 시작했다. 이날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이 전 대통령은 다른 종교를 가진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한 기도로 첫 국회의 첫 회의를 시작하자"며 목사인 이윤영 의원으로 하여금 감사 기도를 드리게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개신교계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으로 전해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종교 편향에 따른 종교계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군종(軍宗)에 군법사(불교)와 군종신부(천주교)를 배분, 개신교로서는 김영삼 정권이 오히려 기득권을 잃은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장로 대통령론'을 주창한 개신교계의 지원에 힘입어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 내각을 꾸리는 등 임기 내내 개신교에 치우친 정책으로 불교 등 다른 종교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초래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봉헌 발언'으로 종교적 편향성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2004년 5월 30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의 부흥을 꿈꾸는 청년연합'의 '청년학생 연합기도회'에 참석,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서'의 낭독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서울의 교회와 기독인들은 수도 서울을 지키는 영적 파수꾼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 기독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인 2011년 3월 3일 제43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사회를 맡은 목사의 요청에 따라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무릎을 꿇어 기도를 올림으로써 개신교가 권력과의 밀월을 넘어 대통령까지 굴복시켰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줬다.

정교(政敎) 분리 원칙을 명시하고 있는 우리나라 헌법 정신에 비춰 개인 이명박의 종교활동은 얼마든지 보장되지만 서울시장,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종교의 자유가 다른 종교의 자유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 비춰 이 전 대통령의 처신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장로 대통령들이 '작위'(作爲)에 의해 종교의 자유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면 원희룡 제주지사는 현재 '부작위'로 인한 논쟁을 초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진 원 지사는 지난 10일 제주시 삼성혈에서 고양부삼성사재단 주관으로 열린 '건시대제'에 도지사가 관례적으로 맡아오던 초헌관을 정무부지사에게 넘기고 자신은 불참했다. 원 지사는 이에 앞서 지난 10월 26일에는 제95회 전국체전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기 위해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에서 열린 '한라산신제'에서도 초헌관을 맡기로 했다가 갑자기 정무부지사에게 대행시킨 적이 있다.

탐라를 창시한 삼을나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1526년부터 봉행돼온 건시대제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한라산신제나 모두 종교행사라기보다는 도민의 무사안녕을 바라는 제주의 전통 제례다.

이에 따라 원 지사가 비록 다른 일정과 겹친 때문이라고 해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도민은 많지 않아 보인다. 결국 종교적 이유로 제관 역할을 연거푸 거부한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아직도 배타성이 짙게 남아 있다는 평을 듣는 제주에서 국적과 종교를 초월, 도민 통합을 주도해야 할 도지사가 제례 참석 여부로 갈등을 초래하는 것은 젊은 잠재적 대권주자의 한 사람으로서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릇에 걸맞은 포용력을 보여주면서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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