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이 제주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논설위원

   
 
     
 
2014년도 벌써 2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의사직종은 매년 건강검진을 해야 하는데 매년 빠짐없이 검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학교와 병원에서 오는 독촉 전화에 시달리게 된다. 해야 되는 건 알지만, 하기가 싫다. 주사바늘에 찔리며 채혈하는 것도 싫고 아침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출근하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도 제일 싫은 건 내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 불규칙한 생활습관, 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왠지 몸이 나빠졌을 것 같은 불안감, 늘어나는 체중만큼 콜레스테롤이나 혈당이 나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항상 건강검진을 12월 말이 돼서야 하는 관계로 송년회 일정과 검사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큰일이다. 독촉 전화와 메일을 받고 나서 건강검진을 할 수 없이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달력을 들여다보니 달력에 크게 표시되어 있는 3일 연속 송년회가 보인다. 아, 송년회에서 술을 마시면 검사결과가 나쁘게 나올 텐데, 언제 검사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머리를 굴리며 날짜를 체크한다. 술이 약한 편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술 마시기를 좋아하지는 않아서 매월 말에 열리는 과내 회식이나 연말에 연달아서 찾아오는 송년회를 앞두고는 의무방어전을 치르는 권투선수 같은 마음가짐이다. 술자리에서 선방을 다짐하며 숙취해소 음료를 챙기고 다음날 점심에는 쾡한 얼굴로 병원 앞 해장국 집에 모이는 생활이 반복될수록 느는 것은 만성 피로이며 나빠지는 것은 건강이리라.

보통 술을 마시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이 상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역시 술은 심장에도 독(毒)이 될 수 있다. 흔히들 적당한 술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러 가지 역학 연구를 살펴보면 중등도의 음주를 하는 절주자는 음주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전체 사망률이 18% 정도 낮은 것이 사실이며 이보다 많은 음주를 하는 경우에는 사망률이 직선으로 상승하는 J 커브 현상을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의 함정은 '절주자'의 정의가 하루에 술을 한잔 내지 두잔 정도를 마시는 남자와 한잔 정도 하시는 여자라는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 볼 때 과연 내가 술자리에서 소주 혹은 맥주를 한잔만 마시고 끝낼 수 있겠는가.

알코올과 알코올의 대사산물은 심장 근육에 직접적인 독성효과를 보이며 이에 장기적인 알코올을 섭취하면서 발생하는 비타민과 미네랄 부족, 전해질 불균형이 심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많은 양의 음주가 지속될 경우 관상동맥 질환 발생률이 높아지며 고혈압 발생률을 높이며 심부전을 만들어 낸다. 또한 과음시 심방세동이라는 부정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뇌졸중 위험을 증가시키며 말초 혈관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 역시 높아지게 된다.

그렇다면 술의 종류에 따라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까. 맥주, 소주, 막걸리는 어떠하며 폭탄주는 또 어떠한가. 현재는 술의 종류에 따라서 심혈관질환에 미치는 효과가 다른지에 대해서는 연구마다 결과가 상반되고 있는데, 어떤 연구에서는 술의 종류를 막론하고 알코올의 양의 문제라고 보고하고 다른 연구에서는 포도주가 가장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고 있어서 확실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음주 관련 연구들이 악용될 여지를 막고자 한다. 절주자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들 보다 사망률이 낮다고 하여 술을 안 마시는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는 경우가 있다. 음주 여부에 따른 관찰연구의 문제는 음주량 이외에 측정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인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지 음주량만을 가지고 이러한 현상을 설명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절주가 금주를 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는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게 중등도 이하의 음주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혹시 독자 여러분이 궁금하실까봐 말씀드리면, 3일 연속 송년회의 중간에 건강검진을 했고 당일 병원 시스템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다행히도 아직은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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