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스토리]20년 노형 민주세탁소 김흥진 대표

▲ 20년 노형 민주세탁소 김흥진 대표
감귤원 더 많던 공간 이젠 '다세대'로 대세
두루마기-단벌 양복-복합원·기능성 교체
임대·원료비 뛰는 동안 세탁비'1000원'↑
"푼돈이지만 약속의 중요함 배운 것 보람"
 
"뭐가 달라졌나고? 여기서 처음 접수 받은 게 '두루마기'였는데 요즘은 아웃도어가 많지"
 
노형초등학교 뒤편에서 올해로 20년째 '민주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흥진 대표(55)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답한다. 1995년 처음 간판을 달 때만 해도 주변 대부분이 감귤원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주변에 공사장이 하나 둘 늘더니 딴 세상이 됐지. 여기 저기 한꺼번에 새 도로가 나면서 통행로 없이 고립돼 고생했던 일도 있었다"는 추억은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다.
 
양복업체에서 월급쟁이로 8년을 일했던 김 대표는 당시만 하더라도 '핫'했던 원도심 대신 텅 비었던 신제주에서 '새 일'을 시작했다. 처음 연 500만이던 임대료는 지금 1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그래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것은 사람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세탁물을 맡기는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이름을 묻지 않는다. "여기서 터를 잡은 게 몇 년인데, 이제는 대충 어느 빌라나 아파트 몇 호인지 다 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늘어나며 20년 전 단 2곳이던 동네 세탁소는 이제 11곳으로 늘었다. 떼를 벗기기 어려울 만큼 반질반질 세월을 탄 단벌 양복이 사라진 자리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능성 의류며 복합 원단이 쏟아지고 깜빡 잊고 찾아가지 않는 옷이 길게는 5~6년까지 주인을 기다린다. 빨래방에 공장형 세탁소로 시장이 쪼개지며 주머니 사정도 예년만 못하다. 한 달 8만원 선이던 세탁용 원료 비용은 이제 40만원이 모자랄 정도가 됐다. "그래도 세탁비는 20년 동안 1000원 정도 올랐나. 이 안에서는 세월이 더디 가지" 
 
365일 세탁소 안에서 생활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사정은 누구보다 빨리 안다. "요즘 수선이 꽤 많이 늘었어. 형편이 좋을 때는 새 옷을 사지만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여간하면 고쳐 입거든. 그만큼 힘들구나 싶어서 더 정성이 가"
 
골목상권 사정이 그렇듯 매년 문을 닫는 세탁소가 늘고 있다. 아쉽지만 시대가 그렇다.
 
그래도 김 대표는 "세탁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소중한 것을 지켜주는 일이거든. 이 자리에서 푼돈이라도 약속을 지키는 일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걸 배웠다"며 계속해 노형 터주 세탁소로 남을 것을 약속했다.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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