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직 외과전문의·논설위원

   
 
     
 
언론은 물론이고 누구도 관심 있게 챙기지 못한 날이었지만 지난 12월18일은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이었다. 이날이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이 된 것은 1990년 12월18일 유엔총회가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이라는 것을 채택하고 통과시킨 것을 기념해서다.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은 그동안 각종 국제조약에서 규정된 '시민' 내지 '거주민'에 가려 사각지대에 있던 이주노동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채택됐다. 이 협약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사회 구성원의 부분으로 그 인권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전문과 9부 93조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이주노동자'란 "국적을 부여한 나라가 아닌 다른 국가에서 유급활동에 종사할 예정이거나 이에 종사하고 있거나 또는 종사하여 온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했다. 2부는 협약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향유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3부는 출국의 자유, 생명권, 고문 또는 비인도적 형벌의 금지, 강제노동의 금지, 사상·양심의 자유, 국외추방의 제한, 노동조합에 대한 권리 등을 규정하고 있고, 4부는 등록된 이주노동자들에게 추가적으로 인정되는 권리로 일시출국의 권리, 이동ㆍ주거선택의 자유, 결사에 대한 권리, 본국 공무에 참가할 권리, 가족의 결합,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규정하고 있다.

벌써 25년 전 유엔 총회에서 이 협약을 채택하고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현 수장을 배출한 한국을 포함해 모든 OECD 국가들이 비준을 하지 않고 있음은 자국민의 노동시장과 경제를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고용법 적용을 통해 이들의 노동력 착취를 합법화 하겠다는 칙칙한 국가주의라 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도 일찍이 노예처럼 팔려 하와이 사탕수수밭과 독일 간호사와 광부파견, 중동의 건설 노동자, 월남전의 외화벌이를 통해 그 경제적 기반이 이뤄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내국인과 이주노동자에게 전혀 다른 차별적 고용법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보장은 유엔이주노동자권리협약 비준에서 시작된다" 는 구호 아래 최근 대한변호사협회가 '유엔이주노동자권리협약 비준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는 것이다.공청회를 통해 대한변협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의 보장은 더 이상 약소국의 국민에 대한 시혜적인 차원이 아니며 세계화와 국제화를 내걸고 있는 우리나라 우리 산업의 가장 힘든 일터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당연히 보장해야 할 권리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합법체류허가를 받은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이탈하여 미등록 노동자가 되지 않도록 사업장 변경의 제한을 수정, 완화할 것이 요구되며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세계적으로 이주 노동자의 수는 2억2300만에 가깝고 한국에서도 60만에 육박하고 있으며 제주만 해도 제주 인구의 1%에 가까운 6000명에 이르고 있다.

비록 중앙정부는 유엔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지만 국제자유도시와 생명평화의 섬을 선포하고 인력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과 평화로운 삶을 주창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만이라도 악법에 가까운 차별적 이주 노동자 고용법을 철폐하고 유엔이주노동자권리협약에 준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 규정을 지방정부 차원에서 먼저 시행하여 제주에서 우리와 삶을 나누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자유롭고 공평한 노동 현장과 삶을 허락할 수 만 있다면 이들에게 가자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
물론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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