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미술평론가·이중섭미술관명예관장·논설위원

   
 
     
 
새해는 양의 해다. 생각나는 몇 가지를 떠올려본다.

먼저 한자 문화권에서의 아름다움이란 글자인 미(美)가 양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상기케 한다. 양(羊)에다 클 대(大)가 합성되어 아름다울 미(美)가 되었다는 것. 왜 하필 아름다움이란 말이 양에서 유래되었을까. 양은 원래 북방 유목민들과 관계가 있으니까 자연 중국 북방의 유목민에서 나온 것으로 유추된다. 유목민들은 소, 말, 양과 같은 가축을 이끌고 초지를 찾아 떠돌아다니는데 정착생활을 하는 농경민족과 달리 이들에게 중요한 생활 방편은 자연 이 가축들에 달려있을 수밖에 없다. 가축 가운데서도 양이 단연 많은 쓸모가 있음이 드러난다.

양은 털이 많아 추운 북방에선 방한에 가장 긴요한 공급원이 된다. 거기에다 덩치가 큰 양은 풍부한 식용에 적용되니 경제적인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물물교환 시기에 있어 그만큼 교환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어 크다는 것은 시각적으로 당당하게 보이니까 권위적인 관념에 상응된다. 시각과 미각과 촉각, 거기다 경제적 가치면에서 월등하니 이를 따를 다른 가축이 없다. 현실적인 욕구의 충족면에서 아름다움이 결부되었다는 데서 중국민족 특유의 미의식의 형성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두 번째, 북방 유목민 못지않게 사막의 유목민족들에게도 양은 가장 중요한 가축으로 인식되었음이 성서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것을 간추려보면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번제를 드리라…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아브라함이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여호와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그를 불러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수풀에 걸려있어 이를 가져다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또 요한복음 1장에는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다가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여 예수를 어린 양에 비유하고 있다. 어린 양이 신선한 제물로 바쳐지고 있는 이야기가 성서에 많은 것도 사막 유목민족들에게 양이 얼마나 중요한 가축인가를 보여준다.

셋째,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에 보면, 기계 고장으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와 다른 별에서 온 어린 왕자와의 첫 만남이 양 그림으로 시작되고 있는 독특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가 이튿날 눈을 뜨자 이상한 작은 목소리에 놀라 주변을 살펴보았더니 이상하게 생긴 작은 꼬마가 진지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실례지만 양 한 마리 그려주시겠어요" 놀란 비행사가 "얘 너 거기서 무엇하니" 해도 대답 대신 "제발 부탁이에요. 양 한 마리 그려주세요"하는 것이다. 비행사가 양을 그리지만 매번 퇴짜를 맞는다.

나중엔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그려 던져 주면서 "이건 상자야. 네가 갖고 싶어하는 양은 이 상자 속에 들어있어" 했더니 놀랍게도 "이게 바로 내가 갖고 싶어하던 그림이에요" 하는 것이 아닌가. 대답 대신 질문만 하는 어린 왕자가 이 양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른 별에서 온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어린 왕자를 통해 알게 된다.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예요"

새해에는 우리도 누군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양 한 마리 그려 보내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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