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편집국장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이다. 세밑을 맞은 국민들이 올해를 반성하고 내년을 설계하고 있지만 제주도민들은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것이 불투명하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악화된 제주도와 도의회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도민들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1682억원이 삭감, 새로운 설계가 쉽지 않은 탓이다.

특히 새로운 삶을 설계하지 못하는 도민들의 근심이 깊음에도 도와 의회는 마지막 순간까지 '네탓' 공방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도민을 무시하는 도와 의회의 갈등이 예산안 파국을 초래했음에도 도민에게 사과하기는 커녕 반성하는 '지방정치의 책임성'은 찾아볼수 없다.

도와 의회의 지방정치 책임성 실종은 여러 집단의 주장과 이익을 조절하고 통합하는 예산의 정치적 순기능을 간과한데서 비롯됐다. 예산을 투쟁의 산물로만 인식한 결과 서로의 생각만을 앞세우는 도와 의회의 '치킨게임'으로 갈등만 악화됐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예산이 도내 단체·마을주민이나 선거구민, 심지어 도의 사업부서까지 의회를 통해 더 많이 확보하려고 다투는 과정에서 타협과 조정이 이뤄지는 정치적 조절·통합의 순기능이 발휘되지 못했다. 도의 예산 편성권과 의회의 심사·의결권이 충돌, 합리적 조정이 필요했지만 각자의 권한만 앞세우는 소모적 논쟁으로 일관한 것이다.

도와 의회가 예산의 정치적 순기능을 외면함으로써 도민들만 애꿎은 피해를 입게 됐다. 도의회에서 삭감한 1682억원이 내년 1회 추가경정예산안 편성까지 집행이 불가능한 내부유보금으로 묶임으로써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쓰이지 못하는 탓이다. 더욱이 도와 의회가 서로를 배격하는 갈등이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제주사회의 분열현상 마저 우려된다. 박정하 정무부지사 등 의회 협력업무를 맡은 정무라인까지 갈등을 부채질함으로써 도와 의회간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는게 도민사회의 분석이다.

주지하다시피 도와 의회는 지방자치의 양 수레바퀴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도민들의 지지로 당선된 민선6기 원희룡 도정과 구성지 의원을 상반기 의장으로 선출한 제10대 도의회는 7월1일 출범과 함께 제주지방자치의 새판을 짜면서 '도민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두개의 바퀴가 서로 소통·협력하면서 수레에 탄 제주지방자치의 주인인 도민을 행복한 땅으로 안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도와 의회의 지나친 갈등과 반목은 제주지역발전을 저해할 것으로 보인다.

도와 의회가 예산안 처리의 갈등을 제주발전의 성장통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의 자세로 견제와 협력이 조화를 이루는 지방자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자치의 양 수레바퀴인 원 지사와 도의원들이 내년도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것 처럼 불통, 불필요한 자존심 대결을 계속 이어간다면 주민소환제를 통해 언제든지 퇴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을 어리숙하게 보거나 속이기 쉬운 '호갱'(호구+고객)으로 무시하는 도지사와 도의원들은 '반풍수'와 다르지 않은 탓이다.

반풍수는 땅의 흉세를 보아 길흉화복을 점치는 서투른 '풍수쟁이'를 말한다.  명당이라고 잡아준 자리가 도리어 집안을 망하게 할 수도 있기에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속담이 전해진다.

반풍수는 주민들의 등골을 빼먹는 것도 모자라 미래세대가 가꿔야할 우리지역까지 망칠수 있기에 반드시 쫓아내야 한다.

도와 의회가 반풍수란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는 예산 편성권이 집행부의 전유물이고, 예산 심사·의결권이 의회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한다. 도지사나 도의원 모두가 도민이 맡긴 권력을 행사하는 대리인에 불과하기에 도민을 정책결정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타협과 조정하는 정치적 조절·통합의 순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때문에 도와 의회는 그동안 쌓인 감정을 풀고 오로지 지역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도민을 정책결정의 주체로 삼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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