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4060]21. 이재선 제주시 실버밴드 단장

▲ 이재선 제주시 실버밴드 단장은 음악을 통해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다시 찾은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한 권 기자
드러머 은퇴후 2003년 제주행
주부난타팀·실버악단 창단
재능봉사 통해 인생2막 일궈
 
"음악이 내 삶이고 내 삶이 음악이야"
 
밤늦은 시간 지하 연습실에서 퍼커션 연주를 선보이는 이재선 제주시 실버밴드 단장(73)의 손 동작 하나 하나에 열정이 묻어났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할아버지' 모습을 걱정했던 기자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타악기를 다루는 이 단장은 어느새 이팔청춘으로 돌아갔다.
 
50여년 전 고향인 충남 온양을 떠나 권투 특기생으로 서울지역 대학교에 들어간 이 단장이 입학 1년도 채 안돼 '권투 글러브' 대신 '드럼 스틱'을 잡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학교 인근 악단 사무실 앞을 지나다 드럼 소리를 좇아 들어간 것이 인연이 됐고, 잔 신부름을 하며 어깨너머 배우던 드럼은 나중에는 실력을 인정받아 유명 악단의 정식 멤버로 활동했다.
 
전국 미군부대 의문 쇼에 월남 공연, 방송사 코미디프로그램 밴드까지 전성기를 보냈던 이 단장은 환갑을 앞두고 후배들을 위해 40년간 잡아왔던 드럼 스틱을 내려놨다. 
 
그런 그에게 시련과 함께 다시 음악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무대가 돼 준 곳이 제주였다. 
 
2003년 제주에 온 뒤 음악을 하며 모아둔 전 재산을 털어 시작한 사업은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문을 닫았다.
 
먹고살기 위해 포장마차 주인이 된 그를 여전히 음악인으로 봐 준 음악학원 원장의 권유가 인생 후반부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썩혀왔던 재능은 봉사로 이어졌다. 가장 먼저 일도1동 올레 난타팀을 결성했고 이어 복지회관 노인들과 하귀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난타 선생님이 됐다.
 
처음 난타를 접한 주부들의 '다듬이' 수준 연주는 이제는 지역 행사나 축제에 설 정도로 프로실력을 갖춰 '업적'으로 남고 있다.
 
재능봉사 욕심은 멈추지 않았다. 제주시의 도움으로 2010년 3월 제주시 실버밴드를 창단, 60~70세 음악인 9명으로 구성된 실버밴드 단장을 맡아 인생 2막을 그리고 있다.
 
이 단장은 "음악은 사람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나에게 음악은 희로애락"이라며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찾은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 아니겠냐"고 웃음지었다.
 
한 권 기자 hk0828@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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