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위원

   
 
     
 
겨울방학이 한창이다. 방학은 한학기 동안 열심히 달려온 아이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휴식과 재충전을 하고, 다양한 경험이나 체험을 하면서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방학은 그리 신나 보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방학이라고 설레고 들떠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오히려 학기 때보다 학원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다보니 하루가 빠듯하다. 시험에 시달리고 입시경쟁에 내몰려 있는 아이들에게 방학이라도 잠시 '쉼'의 여유를 주면 좋으련만 우리의 교육현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방학이면 학원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학원마다 아이들의 학습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적기라며 각종 특강들을 쏟아내고, 아이들은 학원에서 제공하는 학습계획에 맞춰 학교에 다닐 때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를 한다. 초등·중학생이 영어 텝스나 토플·토익 강의를 듣는가 하면 수학의 경우 1~2학기는 기본이고 3~4학기 선행을 하기도 한다. 학원 시간에 맞추다보면 여행이나 체험활동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방학이라고 쉬기는커녕 학기 때보다 더 큰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부모들도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다. 방학동안 어느 학원에 보내야 할지, 공부는 또 어느 정도까지 시켜놔야 하는지 신경을 쓰다보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한 교육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10명 중 7명은 선행학습 때문에 '자녀의 겨울방학이 반갑지 않다'고 답했다. 선행학습은 사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다 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만 손놓고 있다가 혹시 입시경쟁에서 뒤처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바로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이야기할 때 흔히 비유하는 '붉은여왕 효과'다.

붉은여왕은 영국의 작가 루이스 캐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으로 쓴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인물이다. 붉은여왕은 거울나라로 빨려들어온 앨리스의 손을 잡고 숲속을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앨리스는 아무리 뛰어도 자신이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변이 앨리스와 함께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앨리스에게 붉은여왕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 위해 죽어라고 뛰어야 해. 만약 네가 앞으로 나가고 싶다면 지금보다 두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할 걸"

나는 하고 싶지 않지만 남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고, 너도 나도 하다보니 결국 잘 해봐야 제자리다.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앞서기를 바라는 욕심에 아이들을 학원으로 더 내몰게 된다. 우리나라의 연간 정규수업 일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교육 시간도 단연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방학에도 각종 특강에 보충, 선행학습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의 방학은 이처럼 공부를 쉬는 시기가 아니라 학기 때보다 더 집중해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는 시기로 변해가고 있다.

이같은 요즘의 방학 세태는 입시경쟁과 대학 서열화, 학벌위주의 우리 교육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이 지나친 경쟁 중심의 교육을 걱정하고 아이들의 방학생활이 이래도 될까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중에는 나부터 변해보자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이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국가의 몫인 교육에 대한 책임을 부모들에게 전가하는 말일 뿐이다. 아무리 부모들이 변해도 지금의 교육현실이 바뀌지 않은 한 소용이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바뀌면서 100년은 고사하고 10년 앞도 내다보지 않는 우리의 교육정책을 어느 부모가 믿을 수 있을까. 그러니 어쩌겠는가. 방학이라고 마음껏 쉴 여유도 없이 이 학원, 저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을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