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여대생들이 직장을 구하려면 두 개의 벽을 뚫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 전반의 취업난이 그 하나요,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남녀 불평등 구조가 다른 하나다.

여기에 최근에는 ‘눈높이’의 벽이 하나 더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복권당첨이 취업보다 더 쉽다?
졸업을 앞둔 K씨(여·23)는 “원서라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행운아”라고 말한다. 취업난이 지방대와 여대생으로 파급되면서 원서 쓸 기회조차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K씨는 “인터넷 등을 통해서라도 원서를 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다”며 “회사 들어갈 생각 말고 좋은데 시집갈 생각이나 하라는 우스개가 현실로 느껴진다”고 울적해 했다.

대기업들이 사전 심사를 통해 원서를 낼 자격을 주는 ‘기초ID’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데다 지난 상반기 전국 45개 일간지에 게재된 모집·채용 광고상의 성차별 실태에 대한 노동부 조사 결과에서도 불법 채용 공고가 185건에 달할 정도로 여성차별이 다시‘일반적인 채용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성을 뽑는 업체들도 지원 가능 직종을 제한하기 일쑤여서 그나마 기회를 얻은 여성지원자들의 ‘취업 고통’은 여전하다.

△‘눈높이’의 벽
지방대 여대생들의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는데 대해 업체에서는 ‘자세’문제를 지적한다.

최근 도내 6개 대학에 공문을 보내 ‘여성 전문 텔러’희망자를 추천해 줄 것을 요구했던 J은행은 뜻밖의 결과에 당황했다.

지원자가 몰릴 것을 예상해 일부러 ‘교수추천’이란 과정을 거쳤지만 막상 지원한 숫자는 83명에 그쳤다. 그것도 2개 대학에서만 지원자가 있었지 나머지 대학에서는 한 사람의 지원자도 없었다.

은행 관계자는 “심지어 ‘전문 텔러’가 뭔지도 모르는 지원자가 있었다”며 “취업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학교와 학생 모두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제주대 종합서비스센터 취업담당 양숙희씨는 “사실 학생들은 다 지어진 밥도 제대로 찾아먹지 못하고 있다”며 “‘취업박람회’‘모의면접’‘취업설명회’등 학생들을 위한 취업정보를 시시각각 제공하고 있지만 관심을 가지고 참가하는 학생은 고작 몇십명정도다”고 말했다.

사실 2년전까지만 해도 제주대에는 정기적으로 여대생들을 위한 특별 취업설명회를 운영했지만 강의시간 등을 이유로 참석률이 저조, 현재 문을 닫았다.

모의면접도 상황은 마찬가지. 최근에는 기업들이 성적보다 면접 반영비율을 높이고 있는 실정인데도 참여율은 한 자리 수에 불과하다.

△“대학 졸업하고 커피 심부름이라니요”
대학들의 ‘취업률 부풀리기’도 학생들의 적극적인 취업 의지를 가로막고 있다.

최근 제주대가 발표한 2001년 3분기 취업률은 67.4%. 이중 여대생들의 취업률은 70.9%나 된다. 전국 여대생 평균 취업률이 49%대인 것을 감안하면 제주지역 여대생들의 취업 조건은 ‘좋은’편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마냥 찬사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취업률은 높지만 일자리의 질과 임금 수준은 낮아지고 있기 때문.

‘대졸자 취업 통계는 믿을 수 없는 행정통계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일부의 지적처럼 취업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도 없이 졸업생수 대 취업자수 비율만을 가지고 수치를 뽑아내고 있어 고시나 입사 준비생 등 대기 취업자까지 취업률에 포함되는가 하면 단순노무직이나 일용직·아르바이트 등도 취업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막상 졸업 때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할 경우 심리적 부담감까지 더해져 하향취업을 부추기고 있다.

가까스로 바늘구멍을 뚫고 직장을 얻은 대졸 여성들은 취업 이후 또 한번 주저앉는다.

일에 대한 성취감은 둘째 치더라도 임금 수준도 기대 이하다. 최근 노동부 고용안정정보망 work-net 분석결과에 따르면, 3분기 여성 대졸자의 임금 중 60만~80만원이 35.3%로 가장 높고, 직업도 단순노무직이 35.9%로 가장 높았다.

이렇듯 하향 취업한 여성들이 직장에 만족하지 못해 그만 두는 일이 늘어나면서 ‘대졸여성은 회사에 오래 붙어있지 않는다’는 편견을 부채질하는 등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고 미·고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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