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전 애월문학회 회장·시인·논설위원

 
   
 
     
 
 
 
     
 
흔히들 세월을 희화한 얘기로 20대는 20㎞, 50대 50㎞, 80대 80㎞로 나이만큼씩 빨리 달린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아, 2015년이구나!'했는데 훌쩍 1월도 며칠 남기지 않았다. 그러니 '송구영신'이란 말도 이미 머리가 허옇게 센 느낌이고, 초심이 약간 흔들리지만 아직은 일월이다.

사람들은 해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그래서 새해의 시작인 0시를 뭉클한 감회로 맞으면서 새 달력을 벽에 걸어놓는다. 그러고 보면 만물의 영장다운 '인간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은 달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여본다. 

시간이란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진다.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간은 허공처럼 무한으로 이어지지만 사람의 뜻대로 마디마디 잘라놓았다. 1년을 365일, 한 달을 30일, 하루를 24시간으로 계산하였다. 심지어 1년에 0.25일까지 찾아내어서 4년마다 2월에 하루가 추가되기도 한다. 

사람은 왜 무한의 시간을 분초까지 계산하여 자잘하게 잘라놓았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인생을 가치 있고 풍요롭게 하려는 지혜의 소산일 터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루인지 한 달인지도 모르고 이렁저렁 지내다가 어느 날 뒤 돌아볼 겨를도 없이 가고 말 것이 아닌가.

해마다 12월31일 자정을 기하여 종로에 있는 보신각종을 33번 타종한다. TV를 타고 전국으로 전송되는 제야의 종소리, 가슴마다 너울지는 범종의 그 깊고도 은은한 울림은 지난날의 회한으로, 조용히 삶을 돌아보는 성찰로, 과거를 일신하는 특별한 의미로 각인될 것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의 '送舊迎新'이라는 말 자체는 날과 시간성에 의미를 두는 동양적 종교 문화로 주술적, 기복적인 민속제의였으며, 그래서 섣달그믐에는 집 안의 구석구석 묵은 때를 청소하고, 남에게 진 빚도 다 청산하고, 미루었던 일도 깨끗이 마무리하고 나서 새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좋은 풍습으로 이어져왔다 한다.

기독교에서는 절기예배처럼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성경에 새로운 시작을 할 때 단을 쌓는 사례를 따라 매년 12월31일 자정을 전후하여 예배를 드리는데, 지난 일 년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기원하며, 밝고 기쁜 마음으로 새해인사를 나눈다.

사람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송구영신의 뜻을 새기는 마음은 특별히 다르지 않겠지만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휴일로 정해진 미풍양속의 날들이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마는 것은 실로 우려되고 안타까운 일이다. 새해는 밝았지만 상처입은 사자처럼 치유되지 않은 아픔들로 몸이 무겁다. 과거는 다시 돌릴 수 없는 물레방아일 뿐이고 내일은 영원히 붙잡을 수 없는 미래일 뿐 삶이란 오직 지금 뿐이다. 그러나 과거란 얼마나 끈질기게 현재의 발목을 잡는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 그렇고, 우리의 현실로 한일관계가 그렇다. 또한 사람마다 그리움, 아픔, 후회 등 영영 잊지 못하는 일들을 가슴에 묻고 산다.

신은 살인한 죄라도 고백하고 회개하면 다 용서하신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용서와 화해를 구하라신다. 용서를 구했는데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자의 몫이라 한다.

인생에서 삶의 실체란 현재이다. 그러나 과거라는 짐을 지고서는 지금 행복을 걸을 수 없으며 내일은 희망일 수 없다. 과거를 잊지는 말아야 하지만 매이지도 말아야 한다. 희망은 미래를 갖는 것이고 미래를 갖는 것은 현재를 바꾸는 힘이 된다. 여기에 송구영신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2015년은 사회적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한일과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고 우울하고 답답한 우리사회 전반에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가 365일 찬란하기를 기원하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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